생화학전까지 뛰어든 바이오

나토, 英 바이오기업에 478억 투자
우크라전 이후 생화학전 대응 준비
韓, 10~11월 APEC 정상회의 개최
“생물학테러 맞서는 대응역량 필요”


오는 10~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도 생화학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탄저 백신 국산화에 성공한 GC녹십자 연구진의 연구 모습 [GC녹십자 제공]


북미,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최근 이례적인 행보를 보여 화제가 됐다. 478억원의 거액을 영국의 한 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것이다.

22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나토가 조성한 ‘이노베이션펀드’는 영국 스타트업인 포털 바이오텍에 3500만달러(약 478억원) 규모의 투자라운드를 공동 주도했다. 이노베이션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2년 설립돼 나토의 방위 기술 강화를 위해 10억달러 이상 규모의 투자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노베이션펀드가 이렇게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방국가의 군사동맹이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데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그동안 나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꾸준히 경고해 왔다. 나토는 “러시아가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면 직접 대응하겠다”고 밝혔으며, 우크라이나에 화학·핵무기 공격에 대비할 보호장비를 지원해 왔다.

생물학전은 발생하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균 채취 등으로 감지하고, 방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나 베르나르도-간세도 이노베이션펀드 변호사는 “우리는 생물학적 위협을 탐지하고 모니터링하며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털 바이오텍은 인공지능(AI)가 결합된 생물센서를 사용해 단일분자 수준의 병원체를 현장에서 실시간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앤디 헤론 포털 바이오텍 CEO(최고경영자)는 “질병 측정, 팬데믹 예방, 약물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며 “대형 실험실에서 며칠씩 걸리던 분석을 현장에서 수시간 만에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헤론 CEO는 “AI 생물센서로 수질부터 농작물 상태까지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며 “이미 알려진 병원체뿐 아니라 기존에 몰랐던 새로운 위협까지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생물학테러 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는 10월 말~11월 초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APEC 정상회의 기간 테러 공격이나 북한 발 해킹 시도 등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APEC 기간 다수의 정상이 국내를 찾는 만큼 국제 테러 단체들이 이들을 노리고 공격을 할 수 있다”며 “행사 방해 목적으로 인지전이나 해킹을 벌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산 ‘탄저백신’ 보유국이다. 탄저균 배양액에서 방어항원을 정제해 개발하는 방식은 워낙 위험하기 때문에, 자체 개발 백신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영국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GC녹십자가 개발, 국산 신약 39호로 등록된 ‘배리트락스주’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방어항원을 대량 발현하고 순수하게 정제하는 방식으로, 미량의 탄저균 독소 성분에 의한 부작용 유발 가능성이 없어 안전함을 자랑한다.

현재 초동 대응과 일반 국민 보호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탄저 백신은 1000명분에 불과하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4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5만명분의 탄저백신을 비축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생물학테러 대응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안보 분야 관계자는 “생물학테러는 예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초기 대응 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전쟁으로 생물학전 위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만큼, 유관기관과 선제적인 대응 역량을 갖추고 통합적인 대응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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