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의 남산공방] 러·우 전쟁에서의 러시아의 핵무기


2022년 발발한 러·우 전쟁이 어느덧 3년을 넘긴 가운데, 종전을 향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마주 앉았다.

그러나 이것이 전쟁을 종식시킬 수 모멘텀이 될지는 미지수다. 러·우 전쟁은 여러 가지 성격을 지니지만, 무엇보다 핵을 가진 러시아와 핵이 없는 우크라이나가 정면으로 격돌한 대규모 충돌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러시아는 개전 전부터 핵의 존재를 은근히 부각하며 압박을 가했지만, 실제 사용이나 공식적인 사용 예고를 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1945년 이후 단 한 번도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되지 않은 인류 역사는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역사적으로도 핵 사용 가능성이 있긴 했으나 실제 사용은 없었다. 1973년 중동전에서도 비핵 국가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으로 핵보유국 이스라엘은 존망의 기로에 몰렸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핵 단추를 누르지 않고, 재래식 전력만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여기서 핵보유국이 실제로 핵사용을 결심하게 되는 ‘레드 라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러시아는 2021년 말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가입 불허, 동유럽 군사력 증강 금지, 국경 인접 공격무기 배치 금지 등을 요구했다. 이런 종류의 행동으로부터 러시아의 레드라인은 NATO의 직접 참전, 서방의 공격 무기 지원, 러시아 영토 침범 등으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지켜지고 있는 것은 오직 NATO의 직접 참전 배제뿐이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핵 단추를 누르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 핵은 실제 사용보다 ‘강압적 수단’으로 활용할 때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시한 레드라인이 차례로 무시된 현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둘째, 러시아가 재래식 전력에서 우위를 점했기에 핵은 불필요했다는 설명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군사력을 대규모로 투입하고도 목표 달성을 못하여 전쟁이 장기화된 사실을 보면 이 역시 충분치 않다.

보다 설득력 있는 또 하나의 해석은 이른바 ‘핵 사용 자제 이론’이다. 핵무기는 일단 사용되는 순간 정치적 고립, 예측 불가능한 군사적 대응, 나아가 핵전쟁 확산이라는 큰 비용을 불러올 수 있다. 결국 전략적 손익 계산에서 ‘가성비’가 맞지 않기 때문에, 인류는 1945년 이후 한 번도 핵을 실전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우 전쟁에서도 외교적 제약 변수가 있었다. 서방의 외교적 반발과 함께 잠재적 우방국인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의 핵 사용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푸틴에게 핵 단추를 누르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된 듯이 보인다. 이렇듯 핵무기에 대한 국제사회 여론과 주요 강대국의 태도가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는 요인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은 한반도 안보 현실에서도 유용할 수 있다.

즉 한국은 군사적 억제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핵 사용 자제를 위한 외교적 연대와 국제적 공감대 구축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1945년 이후 핵무기 사용이 없는 핵 시대 특징을 반영한 안보 해법이 필요할 수 있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 (전 공군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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