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18년 만에 해체…다시 재경부·예산처 시대로

금융정책 재경부로 복귀…예산처 총리실 직속 독립
“확장재정 추진력 강화” 기대 vs “경제 컨트롤타워 약화” 우려


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로 불렸던 기획재정부가 1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획재정부 간판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가 18년 만에 해체된다.

정부는 기재부를 재정경제부(재경부)와 기획예산처(예산처)로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두 부처를 통합해 출범한 기재부는 1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내년 1월 2일부터 새로운 체제가 본격 가동된다.

재경부는 경제·세제·금융 총괄, 예산처는 총리실 직속


8일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경제정책, 세제, 국고(결산 포함)와 더불어 금융정책 전반을 총괄한다. 경제부총리는 재경부 장관이 겸임한다. 금융위원회로 넘어갔던 국내 금융정책 기능도 재경부로 복귀하면서 환율 관리, 국제 금융 협력까지 포괄하는 부처로 재편된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전환돼 감독 기능에 집중하며, 산하에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새로 설치된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원과 함께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기획예산처는 국무총리 소속 장관급 기구로 독립한다. 각 부처 예산안 편성과 배분, 국회 심의 대응, 집행 관리와 성과 평가를 맡고, 정부 기금 운용과 재정 건전성 확보, 국가발전전략 수립까지 아우른다. 예산처가 총리실 산하에 들어감으로써 국무총리가 직접 ‘나라 곳간’을 관리하는 체제가 마련되는 셈이다.

공공기관 관리 기능도 손질된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재경부 소속으로 이관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 위원장은 재경부 장관과 민간위원이 공동으로 맡고, 상임위원과 사무국이 신설된다. 기존 기재부 공공정책국은 공운위 사무국으로 공기업 경영평가와 혁신 등 공공기관 관리 기능을 확대하게 된다.

통계청은 국가데이터처로 격상돼 국무총리 소속으로 바뀐다. 국가데이터처는 국가통계를 총괄·조정하고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 데이터 연계·활용 체계 구축 등 범정부 데이터 관리 기능을 맡는다. 기존 통계청장과 동일한 차관급 기관장이 배치된다.

반복된 통합·분리…권한 집중 견제 AI 대전환에 선제 대응


이번 기재부 해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한국 정부 조직사에서 반복돼 온 흐름의 연장선이다.

기재부는 과거에도 통합과 분리를 반복했다.

기획재정부의 뿌리는 1948년 재무부와 기획처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재부의 뿌리는 1948년 설립된 재무부와 기획처다. 존속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기획처를 대신해 1961년 설립된 곳이 경제기획원이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기재부의 진정한 뿌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설립했다. 기재부처럼 ‘공룡 부처’였다. 재정경제원은 1998년 재경부와 예산청·기획예산위원회로 나뉜다. 이듬해 예산청·기획예산위원회는 예산처로 대체된다. 이는 1999년부터 기재부 출범 시기인 2008년까지 유지됐다.

이후 재경부와 예산처가 통합돼 기재부가 출범했지만, 이번 개편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개편으로 특정 부처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기후위기·인공지능(AI) 대전환 등 미래 과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예산처가 총리실 산하에 설치되면 국정과제 추진 동력이 강화되고, 예산권을 바탕으로 각 부처 정책을 종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권은 “확장재정을 통한 잠재성장률 제고”라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본다.

재경부와 예산처가 각각 핵심 기능에 집중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재경부는 거시경제·세제·금융 분야에 특화돼 시장 상황에 맞는 대응이 가능해지고, 예산처는 재정 건전성 확보와 지출 혁신에 전념할 수 있다는 논리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인사 적체 해소와 금융정책 복귀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 약화” 우려


반면 우려도 만만치 않다. 경제부총리가 예산권을 잃으면서 경제 컨트롤타워로서의 위상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입을 담당하는 재경부와 세출을 담당하는 예산처가 분리되면 재정총량 관리에서 엇박자가 날 수 있고,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금융 발작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재경부가 대응 전략을 짜더라도 예산을 쥔 예산처가 동의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며 “컨트롤타워 약화로 위기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권이 사실상 대통령실 직할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정덕구 전 재경부 차관은 “과거 기재부 관료들은 정치적 예산을 잘라내고 경제부총리가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총리실 산하 예산처가 대통령 뜻을 거스를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달 중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인력 조정과 청사 재배치 등 실무 작업은 연말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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