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되지 못한 감각…김은정 개인전 ‘말, 그림’

학고재 개최…11월 8일까지


김은정 ‘고래 나무 물사슴’(2025). [김은정]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책의 좌우 페이지처럼 캔버스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분리된 동시에 연결의 장으로 펼쳐지는 화면은 ‘세계를 한눈에 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그림과 그림을 이어주는 여백에서 더 많은 이야기와 감각이 발생한다.

학고재는 오는 11월 8일까지 김은정의 개인전 ‘말, 그림’을 개최한다. 학고재에서 두 번째로 여는 개인전으로, 회화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김은정은 언어로는 끝내 발화되지 못하고, 그림으로도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미묘한 지점을 탐구한다. 감각과 사유, 상상과 정서를 회화라는 매체에 담아내며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해 왔다.

‘고래 나무 물사슴’, ‘한강의 초록비’, ‘부리 물고기 뿌리’ 등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날씨와 같은 자연 현상을 소재로 삶의 불확실성을 표현한다. 화면은 현실을 초월하는 허구와 상상을 담지만 그 기저에는 작가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순간이 깔려 있다. 오래 바라본 풍경을 기억 속에 간직한 뒤, 그 잔상을 독백처럼 화면에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번 전시는 변화와 정체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장면들은 하나의 서사로 고정되지 않고, 여러 번의 겹침을 통해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한다. 화면에 남겨진 흔적들은 우연성과 필연성을 동시에 품으며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전시 제목 ‘말, 그림’은 쉼표와 띄어쓰기가 만들어내는 간극을 은유한다. 언어와 이미지, 설명과 감각 사이의 거리는 단절이 아니며 서로를 비추고 보완하는 긴장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작가는 “‘말’이라는 논리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나는 ‘그림’을 통해 지각과 존재의 방식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림을 통한 말하기’이자, ‘말 너머의 그림’을 향한 시도인 것이다.

관객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프레임 안과 밖,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지점을 응시하며 지각과 존재의 조건을 경험할 수 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