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때문에 보증금 못받을까 무서워” 세입자들 ‘잠못드는 밤’ [부동산360]

대출 축소로 매수자·집주인 모두 자금경색
‘4개월 내 주택 처분’ 물리적으로 쉽지 않아
‘입주가능물건’ 자체 희소해져…부작용 우려


고민하는 사람.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 내년 1월 계약만료와 함께 전세금 10억여원을 돌려받아야 하는 서울 송파구 거주 세입자 A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 B씨는 각종 대출 규제로 당장 돌려줄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B씨는 30억원이 넘는 해당 주택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연이은 규제와 10·15대책으로 인해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 한도 주택담보대출만 가능해 자금 흐름과 타임라인이 맞는 신규매수자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10·15대책에 따라 20일부터 서울 전역 및 경기 12개 지역에 대한 토지거래가허가제의 효력이 발생하면서 대출규제 및 거래 위축에 따른 전세금 미반환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갭투자가 사실상 막히고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적용으로 허가일로부터 통상 4개월 안에 잔금·등기·입주를 마치는 기한이 부여되면서 집주인의 자금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20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에 따라 이날부터 서울 전 지역과 과천, 분당 등 경기 12개 지역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다. [연합]


토지거래허가제 지역에서는 매수자의 4개월 내 실입주·2년 실거주 의무가 있어 세입자가 있는 유주택자가 주택을 처분할 때 기존 임차인에 보증금을 돌려준 후 공실 상태에서 매도해야 한다. 세 낀 매물 거래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조건이 맞아야 한다. 이 경우 ▷세입자를 내보낸 후 집주인이 실거주를 2년 한 후 매도하거나 ▷ 계약갱신권을 행사하지 않는 세입자의 계약만료가 4개월 남은 상태에서 임대차계약종료확인서를 받은 뒤 매수자가 토지거래허가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문제는 현재 6·27 대책 및 10·15대책으로 집주인의 전세금 반환대출 등 한도가 축소되면서 세입자가 있는 매물은 입주가능물건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울의 주택은 절반 이상이 집주인이 살지 않아 앞으로 타격은 더욱 커질 수 있다. 2023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자가점유율은 44%(전국 평균 57.4%)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다.

이 같은 분위기에 전세보증금을 안정적으로 반환받고자 이사 날짜를 무리해서 조정하는 임차인들도 나오고 있다.

집주인이 갭투자한 물건에 전세로 거주 중인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계약만료를 앞두고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새 세입자가 된다는 날에 무조건 이사 날짜를 정했다”면서 “계획과 달라져 이사 비용이 2배 가까이 나가지만 전세금을 제때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토허제 확대 적용으로 거래 가능 매물이 적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 피해는 커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토허제 매물 중개 경험이 있는 공인중개사 A씨는 “전세금으로 매수계획을 세웠던 무주택자도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는 등 매도인, 매수인, 세입자들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 도미노 여파가 벌어질 수 있다”면서 “현금여력이 없는 실수요자들은 사실상 거주 이전의 자유가 침해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출도 안 나오고 세입자를 보내기도 쉽지 않아지면서 실거주하기 힘든 구조가 안 그래도 고착화되고 있었다”면서 “이번 대책으로 부작용과 가격 왜곡이 계속 나오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15개구 구청장,부구청장들이 22일 서울시청에서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관련 공동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이에 서울시구청장협의회와 서울지역 15개 자치구 구청장들은 지난 22일 정부의 10·15대책에 대해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허가 후 4개월 내 실입주 및 기존 주택 처리하는 조건이 임대차 3법 갱신요구권과 충돌할 때 등 인간사에는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면서 “이를 고려하지 않아 주민 불편을 키울 아주 극단적인 규제”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이사가 도래하거나 매수 계획을 세우던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토허제의 취지가 아파트값을 잡는 용도로 변질된 상황에서 전세 낀 매물은 정상 매물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규제가 없어도 주택의 4개월 내 처분은 쉽지 않은데 자금이 불충분한 분들은 거래든 매매든 전체적인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대출한도 축소로 자금이 경색되면서 매수자의 신규 진입이 제한되고 집주인이 전입하려 해도 대출한도가 줄어 결국 세입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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