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에너지 시대’ 구호, ‘비싼 산업 쇠퇴’로 돌아올 수도 [현장에서]


“태양광과 풍력은 현재 가장 싼 에너지원이 됐습니다.”

10월 2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한 발언이다.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높아진 만큼, 이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정부의 인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값싼 에너지의 이면에는 제조업 경쟁력 약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김 장관의 말마따나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 단가는 석탄·가스보다 낮아졌다. 중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도 재생에너지는 이미 저렴한 에너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는 넓은 사막이나 해상 단지 등 부지 확보가 용이한 지역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다보니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기 어렵고, 인구 밀집 지역과 발전 거점이 떨어져 있다. 지방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옮기기 위한 송전망 구축에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여기에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양수발전 등 추가비용까지 고려하면 ‘가장 싸다’는 말은 우리 현실과 다르다.

녹색산업 확산을 자신하는 정부 기조와 달리, 지난해 국내 태양광 제조사의 내수 매출은 2019년 대비 30% 이상 줄었다. 보급량은 2배 넘게 늘었지만 시장은 값싼 중국산 부품이 채웠다. 제조사는 기술 개발보다 유통 중심으로 전환했고, 산업의 자생력은 약화됐다. 정부의 ‘녹색 전환’ 정책이 산업 현장의 수익 구조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엇박자는 배출권 거래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4차 계획기간(2026~2030)을 앞두고 유상할당과 경매 비중 확대를 추진 중이며,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도 2018년 대비 ‘50~60%’과 ‘53~60%’의 복수안으로 결정했다. 그간 산업계가 요구해 온 수치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계는 “현실적 감축 여력을 무시한 과도한 목표”라며 우려한다. 주요 업종의 추가 배출권 구매 부담만 5조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부는 탄소 누출 업종에 무상할당을 제공해 경쟁력을 보존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발전 부문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이 비용은 전기요금이나 제조업 원가에 일부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경제인연합회 분석에 따르면,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중이 50%로 확대되고 배출권 가격이 톤당 3만원 수준에 이를 때 산업용 전기요금은 약 2조5000억원 늘 것으로 추산됐다. 국감에서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국제경쟁력 영향 등을 고려하라는 내용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기후부는 유상할당 수익을 탄소감축 기술 투자에 쓰겠다고 했지만, 그 시차도 문제다. 배출권 비용은 기업의 현금흐름을 즉시 막는 반면 감축 효과는 수년 뒤에야 나타난다.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내연기관 부품 일자리 3분의 2가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산업계가 우려하는 건 단순히 감축 목표의 강도가 아니라 제도의 현실성이다. 감축 속도와 산업 경쟁력이 균형을 잃으면, ‘값싼 에너지의 시대’란 구호가 결국 ‘비싼 산업의 쇠퇴’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고은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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