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들듯, 울긋불긋한 염생 식물
사해처럼 몸이 뜨는 부유욕 테라피
세계유산 갯벌·소금 주제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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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해질녘 태평염전 염생식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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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가유산이자 천일염 최대 생산지 태평염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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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펄의 속삭임’ 미술전시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상일 태평염전 대표 |
[헤럴드경제(신안)=함영훈 기자] 신안 증도 태평염전에 가면 맘모스, 동명성왕,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스라엘-요르단 사해에서나 해 볼 수 있는 희귀한 부양욕(浮揚浴)도 한다.
지금도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지인 태평염전은 소금 생산 유적을 가진 국가유산이면서 인문학 교실이고 미술관, 뷰·석양·염생 단풍 맛집이기도 하다.
태평염전 소금박물관에 가면 맘모스 가족이 길 떠나는 대형 조각품이 여행객들을 맞는다. 맘모스는 생존에 필요한 소금을 찾아서 지구촌 이곳저곳을 이동했고 그 뒤를 인류도 쫓았다. 문명의 시원을 소금이 연 것이다. 그 길을 맘모스 스텝 혹은 소금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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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모스 가족의 소금길 여정을 형상화한 조각품 |
동명성왕은 고구려 건국 전 청년 시절, 조국 부여에 소금이 부족해지자 티베트 소금산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 대량의 소금을 채취해 돌아온 그는 백성의 신망을 얻고, 훗날 고구려 건국의 발판을 마련했다.
고구려가 건국된 지 몇십년 후에야 틀을 갖춘 로마제국은 로마~아드리아해 염전도시 연결로를 뚫고 ‘비아살라리아’(viasalaria)라고 불렀다. ‘통한다’는 뜻의 ‘Via’와 소금을 뜻하는 ‘Salaria’가 합쳐진 이름이다. 소금의 허브가 된 로마는 자연스럽게 부강해지고 국민들은 일자리를 얻어 재산을 축적해 갔다. 급여는 소금에서 온 살라리움(salarium)이라 했고, 나중에 영어로 샐러리(salary)가 된다.
이맘때 북한산, 오대산, 소백산, 영남 알프스, 내장산 등 곳곳에 단풍이 들 듯, 지금 태평염전도 푸르던 염생식물이 분홍, 자주, 초록의 병치혼합을 보인다. 자연도 이미 예술인데, 실내 소금박물관에선 오는 12월 4일까지 ‘개펄의 속삭임’ 미술 전시회를 진행 중이다.
태평염전은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염전 한켠에서 뜨내기 임차인이 천인공노할 반칙을 저지르는 바람에 그간의 시스템을 되돌아보느라 잠시 주춤했지만, 태평염전이 지난 70여년간 빚어내고 있는 건강 소금의 가치는 맘모스 때나, 고구려·로마제국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가등록유산인 140만 평의 태평염전은 1953년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 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깔끔하게 정비해 출범했다. 이곳은 국내 천일염의 약 6%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염전이다. 갯벌을 다져 만든 흙판 염전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토판천일염’은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신안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고, 증도는 람사르 습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짱뚱어 다리 일대) 등 세계적인 생태 여행지 4관왕을 차지했다. 유네스코는 태평염전에서 생산되는 갯벌 천일염에 에코라벨(친환경 생산품 인증) 사용 자격을 부여했다.
이곳엔 드넓은 염전 외에도 염전 체험장, 염생식물원, 예술가의 집 스믜집, 야외 조각 전시장, 낙조 전망대, 해양 힐링센터와 소금동굴 힐링센터, 힐링 캠핑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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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힐링센터 부유욕 모습. 아래사진은 사해. [태평염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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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전나루터 자리 소금항카페의 소금아이스크림 |
해양힐링센터에선 농도 짙은 건강 소금물 탕에 들어가 몸이 뜨는 체험, 즉 부양욕 테라피를 받기도 한다. 소금물에 몸이 뜨는 기분은 비슷하겠지만, 치유 효과 면에선 요르단-이스라엘보다 낫다.
천일염으로 만든 인공 소금동굴은 미세한 항산화 소금 입자를 호흡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45분간 몸에 이로운 88가지 물질이 흡수돼 심신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염생식물원엔 미네랄과 사포닌이 풍부한 함초를 비롯해 갯메꽃, 해당화, 칠면초 등 100여 종의 염생 식물들을 만난다. 소금 바람길 3km 산책로에선 염전을 가로지르며 고요한 염전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이곳의 건강 소금을 실어 나르던 나룻터는 소금항 카페가 되었다. 카페 창문 넘어 보이는 증도대교가 2010년에 개통돼 더 이상 배가 필요 없게 됐다. “믹스커피에 소금을 미량 넣었더니 더 달더라”라는 말처럼 이 카페 소금빵과 소금 아이스크림도 신기하게 더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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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전 반영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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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생식물원 산책 프로그램 |
이곳은 단순히 소금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천일염 항균 기능, 미네랄의 근육 이완과 피부 건강기능, 해양 기후의 심신 안정 기능 등을 활용한 해양 치유(힐링) 사업으로 확대해 태평소금의 6차 산업은 한단계 더 도약하고 있다는 게 염전 측의 설명이다.
‘개펄의 속삭임’ 전시는 2019년부터 매년 진행하는 ‘소금 같은 예술’ 아트 프로젝트,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매년 작게는 48개국에서 많게는 87개국에서 수백명 아티스트가 지원하고 최종 8~9명을 엄선한다. 소금 생산 전통 계승을 위한 후계자 양성은 태평 소금대학에서 진행 중이다.
김상일 태평염전 대표는 “귀한 소(牛), 고귀한 금(金) 같은 소금의 가치가 건강 힐링으로, 인문학 여행으로도, 예술로도 즐기시길 바란다”며 “갯벌과 천일염의 지대한 가치가 더 폭넓게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