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공급과잉 속 생산 감축·합병 검토 잇따라
대산 1호 재편안 확정 이어 여수·울산도 잰걸음
데드라인 압박 속 전기요금 부담 완화 등 요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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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석유화학 국가산단 전경. |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공급과잉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 3위 업체인 여천NCC가 내부적으로 대규모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을 검토할 정도로 생존 위기에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석화업계에 구조재편 압박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각 업체 간 통합 논의부터 개별 업체의 감산 검토까지 잇따르며 전체 석화산업의 재편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김길수 여천NCC 공동대표는 최근 내부에서 “여천NCC는 기본적으로 크래커 90만톤 감산을 우선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최대 140만톤(t)까지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여천NCC는 지난 8월부터 3공장(에틸렌 50만t)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1·2공장의 생산능력이 각각 90만톤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기존 모든 NCC 라인의 고정비 부담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천NCC는 운용 자금이 소진되는 등 극심한 경영난을 겪다가 대주주 지원으로 한숨을 돌렸지만, 업계 전반의 불황으로 3공장 가동을 멈추는 등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자구책을 마련해 전달하기로 했는데, 자구책 중 하나가 이날 확정이 예상되는 원료공급계약이다. 여천NCC는 원료공급 계약 마무리를 포함, 최종 자구안을 담은 사업재편안을 도출해 곧 채권단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초 ‘대산 1호 재편안’ 금융지원 방안 마련될 듯=업계의 극심한 불황 속 각사는 몸집을 줄이고 통합에 나서는 등 다양한 경로로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중동발 증설 공세 속에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으며, 정부는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공식화했다. 지난 8월 주요 10개 석화업체는 최대 370만t 규모의 설비(NCC) 감축을 목표로 각 사별로 구체적 사업재편 계획을 연말까지 제출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 중 대산 석유화학단지에서 사업재편 계획이 가장 먼저 마련됐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최근 대산 나프타분해시설(NCC)을 통폐합하는 재편안을 확정, 자율구조조정안을 제출했다. 양사가 현재 대산 석화단지 내 각각 운영하는 석화제품 생산시설을 통폐합하는 게 골자로, 롯데케미칼이 대산공장을 물적 분할해 신설법인을 만들고 해당 분할회사가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는 구조다. 합병 후에는 HD현대케미칼이 존속하고 분할신설법인은 소멸하며, 이후 롯데케미칼이 합병법인의 주식을 추가 취득해 최종적으로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지분을 50%씩 보유하게 될 예정이다.
양사의 자율구조조정안 제출에 따라 금융지원이 본격화하며, 산업은행 중심의 채권단은 내부 검토를 거쳐 서면 결의를 마친 이후 정식 실사에 돌입할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달 중순, HD현대케미칼은 내년 1월 중 채권단 실사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진다. 실사에 이어 자구계획 확정, 금융지원 방안이 마련돼 빠르면 내년 1분기 내 금융지원 방안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수·울산도 속도…정부 “데드라인 맞춰야”=여수 산단의 경우 여천NCC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에틸렌 공급 계약 재체결이 이날 마무리될 것으로 전해진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 각각 140만t, 73만5000t 규모의 에틸렌을 공급해왔는데, 원료가 갱신을 두고 충돌하다가 석화 사업재편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양사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계약 재체결은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사업재편안 제출 선제 조건 중 하나다. 일각에선 여천NCC가 단지 내 다른 석화업체와도 통합 논의를 진행 중인데, 원료 공급가격이 확정되며 통합 논의가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울산에서는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등 3사가 외부 컨설팅 기관의 자문을 통해 재편안 마련을 추진 중이다. 이들 업체는 사업재편 방안을 의뢰할 컨설팅 업체 선정을 놓고 갈등을 빚었지만 업체 선정에 합의해 현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정부는 대산에 이어 나머지 석화단지도 골든타임에 맞춰 감축안을 서둘러 제출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특히 연말까지 재편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지원은 없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찾아 NCC 기업들에 “(구조조정) 속도를 내지 못하면 정부 지원은 없으며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업계에선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 등을 통한 원가경쟁력 확보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주로 도입했던 러시아산 납사·원유 등의 수입 길이 막힌 가운데, 전기요금은 정부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꾸준히 상승해 올해 2분기 기준 석화 산업 매출원가의 5.11%를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