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에서 관할로…미국, 베네수엘라 원유 무기한 통제 공식화

제재로 묶인 원유 미국이 대신 판매, 수익 사용처도 결정

중·러와 협력 차단 요구…미 석유기업 진출 조성 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로 수출이 막힌 베네수엘라 원유를 직접 인수해 국제시장에 판매하고, 그 수익금의 사용처까지 통제하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베네수엘라 에너지 자원에 대한 미국의 관할이 사실상 본격화되는 국면으로, 경제적 이익 확보와 동시에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적을 동시에 노린 조치로 해석된다.

7일(현지시간) 미 행정부 설명을 종합하면,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약 3000만~5000만배럴 규모의 원유를 넘겨받아 이를 시장에 판매하고, 발생한 수익금의 분배를 미국 정부 재량으로 결정하기로 베네수엘라 정부와 합의했다. 해당 원유는 미국의 제재와 수출 봉쇄로 인해 저장고와 유조선에 쌓여 있던 물량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베네수엘라 임시 정부가 원유를 미국에 넘기기로 합의했으며, 미국은 이미 국제시장 판매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익금 사용과 관련해 “미국인과 베네수엘라인의 이익을 위해 분배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원유 판매 통제를 통해 베네수엘라 정부를 압박하고, 향후 정책 변화와 미국 기업에 유리한 에너지 사업 환경을 끌어내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원유 판매 통제는 베네수엘라 당국을 상대하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라고 설명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도 “원유와 현금 흐름을 통제하면 필요한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대목은 원유 판매가 이번 물량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너지부는 베네수엘라 원유 판매 통제가 ‘무기한(indefinitely)’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핵심 수출 자원을 장기간 미국이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베네수엘라가 이 같은 합의에 응한 배경으로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꼽힌다. 미국은 카리브해에 군사력을 유지하며 비협조 시 추가 조치를 경고하고 있고, 원유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봉쇄를 뚫을 현실적 수단이 없다.

미국은 원유 운송과 판매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제재를 선별적으로 완화하는 동시에, 석유 생산 확대를 위한 장비·부품·서비스 수입도 허용할 계획이다. 에너지부는 여기에 미국과 국제 에너지 기업의 기술과 투자가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부는 셰브런,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 등 미국 석유 대기업의 베네수엘라 재진출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다만 정치·경제적 불안정이 여전한 베네수엘라에 기업들이 다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이후 ‘포스트 마두로’ 체제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에는 지정학적 계산도 깔려 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영향력 확대 명분으로 중국·러시아·이란 등 경쟁 세력의 중남미 진출 차단을 거론해왔다. 미 언론에 따르면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측에 중국·러시아·이란·쿠바와의 경제 협력 중단, 원유 생산의 미국 중심 협력, 중질유 판매 시 미국 기업 우선권 부여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될 경우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공급선 재편 부담을 떠안게 된다. 베네수엘라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미국의 직접 관할이 경제적 이해를 넘어 미·중 전략 경쟁의 한 축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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