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왕좌를 쉽게 내주진 않았다, 하지만…


1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크립토닷컴 아레나. 흰색 민소매 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곱슬 금발 머리를 날리며 무대에 등장한 로제는 기타를 든 브루노 마스와 함께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의 문을 열어젖혔다.

로제의 히트곡 ‘아파트’(APT.)의 록버전이 아레나에 울려 퍼지자 빌리 아일리시는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배드 버니와 마일리 사이러스는 박수로 호응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는 ‘K-팝의 잔치’가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우선 행사의 얼굴격인 오프닝 공연을 로제에게 맡겼고, 제너럴 필드(General Field, 4대 본상) 중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의 후보에 올렸다.

그뿐이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골든(Golden)’은 ‘올해의 노래’를 비롯한 5개 분야에 노미네이트 됐고, 하이브의 글로벌 아이돌인 캣츠아이도 ‘최우수 신인상(베스트 뉴 아티스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BTS)이 수상자나 축하 공연을 위해 ‘참석’만 해도 놀라워했던 수년 전 분위기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래미는 왕좌를 쉽게 내주진 않았다. 사전 행사에서 ‘골든’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을 수상하며 이재 등 K-팝 송라이터들이 그라모폰을 들어 올릴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본상은 아니지만 국내 출신 팝 아티스트들이 그래미상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행사가 시작된 이후엔 K-팝 후보 중 누구도 수상자로 호명되지 못했다. 글로벌 양대 차트인 빌보드와 오피셜 차트를 모두 석권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던 그들의 성과를 생각하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K-팝 후보들의 ‘본상 불발’은 매년 비판되는 그래미의 보수적 성향과 함께 올해 K-팝 후보들의 ‘K-팝스럽지 않은’ 점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아파트’나 ‘골든’ 모두 내용은 한국 문화를 내포하고 있지만 음악적 작법이 미 주류 음악과 다르지 않았고, 가사 역시 90% 이상 영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예술성이나 작품성, 사회적 영향력을 중시하는 그래미의 특성상 K-팝 후보들의 작품에 사회적 메시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배드 버니는 앨범 가사가 대부분 스페인어지만 이민 사회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덕분에 비영어권 장르 가수 최초로 그래미의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그래미가 배드 버니에게 대상을 줄 정도로 보수적 성향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올해는 K-팝의 글로벌화를 견인했던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의 두터운 팬덤은 K-팝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을 환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그래미 시상식에 K-팝 스타들의 등장이 자연스럽고, 본상 수상까지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나 싶다.

신소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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