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동이 동시에 빛났다…66년 기다림 끝에 열린 한국 스노보드의 전성기[2026 동계올림픽]

알파인·프리스타일 동시 석권, 사상 첫 ‘멀티 메달’
기업 지원·세대교체가 만든 구조적 도약

 

9일(현지 시각)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유승은이 시상대에 오른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한국 스키·스노보드가 동계 올림픽 첫 출전 66년 만에 처음으로 단일 대회 ‘멀티 메달’을 수확하며 전성기 진입을 알렸다. 개막 이후 4일 차를 맞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메달 소식은 모두 스노보드에서 나왔다. 9일 남자 평행대회전의 김상겸이 은메달을, 10일 여자 빅에어의 유승은이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스키·스노보드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썼다.

한국 스키·스노보드는 1960년 스쿼밸리 대회를 통해 올림픽 무대에 처음 섰지만 메달과는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았다. 전환점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었다. ‘배추보이’이‘ 이상호가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을 따내며 사상 첫 설상 종목 메달을 신고했다. 그러나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다시 메달 소식이 끊겼다. 이번 대회는 명맥 회복을 넘어 사상 처음으로 단일 올림픽에서 두 개의 메달을 동시에 거둔 대회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유의미한 변화는 메달의 ‘결’이다. 이상호와 김상겸의 메달이 속도를 겨루는 스노보드 알파인 계열(평행대회전)에서 나왔다면, 유승은의 동메달은 점프·회전·비거리·착지를 채점하는 프리스타일 계열 빅에어에서 나왔다. 한국 스노보드가 특정 종목에 국한된 경쟁력을 넘어 기술과 창의성을 겨루는 영역에서도 올림픽 메달 국가 반열에 올랐음을 증명한다.

유승은이 2차 시기를 마친 뒤 보드를 집어던지고 있다. [연합]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구조적인 지원이 있었다. 롯데그룹은 2014년 신동빈 회장이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장을 맡은 이후 10년 넘게 종목을 뒷받침해 왔다. 당시 협회는 리더십 공백 속에 평창 올림픽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롯데의 지원을 계기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신 회장은 재임(2014~2018년) 동안 175억원 이상을 지원했고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약 500억원을 후원했다. 이후에도 롯데 출신 임원들이 협회장을 이어 맡았고 2022년에는 스키·스노보드팀을 창단해 유망주들에게 계약금·훈련비·장비를 지원하며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번 대회 여자 스노보드 사상 첫 올림픽 입상을 이룬 유승은 역시 롯데 스키·스노보드팀 소속이다. 롯데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유망주 최가온이 국제대회 도중 큰 부상 당했을 때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등 선수 보호에도 적극 나섰다. 이런 토대 위에서 월드컵과 국제대회 성과가 쌓였고 평창의 은메달과 이번 대회의 ‘멀티 메달’로 결실이 이어졌다.

8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결승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상겸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

올림픽 해설을 맡은 박재민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노보드 심판위원장은 “재능 있는 선수들이 여러 종목에서 동시에 등장했고 협회가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양성한 결과”라며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수준의 시설이 조성됐고, 해외 지도자 영입과 교류 훈련이 가능해진 것도 성장의 핵심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전성기의 신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달 기대 종목으로 꼽혔던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의 최가온과 이채운,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의 정대윤이 현재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3승을 거둔 최가온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까지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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