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이 바꾼 M&A 지형도…경영권 전쟁도 뒤흔든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안 통과
‘경영권 방어 수단’ 활용 사실상 막혀
교차투자·3자배정 등 방어형 딜 부상
공개매수·새 M&A 구조 재편 가속화

 

25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3차 상법 개정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통과되고 있다. [연합]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자사주를 활용한 전통적인 경영권 방어가 차단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전략적 지분 거래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졌다. 경영권 분쟁이 발발하기 전 우호 지분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방어형 딜’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백기사에서 전략적 지분 투자로=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자사주 활용이 사실상 막히면서 대안으로 ▷기업 간 교차투자(상호주식보유) ▷제3자 배정 신주발행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기업들이 서로 주식을 사주면서 ‘혈맹’을 맺거나 신주를 발행해 우호지분을 확대하는 방법들이다. 신주·구주를 포함한 지분 거래 자체가 경영권 방어 전략의 핵심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자사주를 보유해 경영권을 유지한 기업이 많았지만 상법 개정으로 구조적 제약이 커졌다”며 “한국도 행동주의 펀드가 활발해 지고 있어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모두 경영권 보호 방안 마련에 고심이다. 일본 사례처럼 지분율이 취약한 기업들이 서로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고 했다.

분쟁 가능성을 전제로 평소 지분 구조를 설계하고 소수 지분 투자자를 확보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뜻이다. 기존에는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자사주를 우호주주에게 넘겨 의결권을 살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흔히 말하는 ‘백기사’다. 하지만 3차 상법 개정안 통과로 자사주 보유·활용이 매우 까다로워지면서 경영권 분쟁 상황에 자사주를 활용해 즉각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자사주를 기초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거나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등 자사주 소각을 피하고 향후에 활용하기 위해 ‘파킹’하는 움직임이 많았다”며 “이제 신주 발행이나 상호 투자로 경영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25일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 취득 이후 1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했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제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포괄적 이전·합병 ▷경영상 목적으로 정관에 사유를 규정한 경우에는 자기주식을 보유하거나 제3자에게 처분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만 대체 수단 역시 법적·제도적 한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3자 배정 신주 발행의 경우 ‘경영상 목적’을 인정받기 어렵고 주주권 침해 논란에 직면할 소지가 있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는 경영상 필요 요건이 더욱 까다롭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기업 간 교차투자는 제3자 배정 신주발행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투자 목적과 경제적 타당성을 충분히 소명할 필요가 있다.

대형로펌 변호사는 “계열사가 아닌 독립 회사 간 10% 미만 주식 상호보유는 형식적·일반적 규제에 직접 걸리지 않는다”면서도 “경영권 분쟁·백기사 구조 등 구체적 맥락에서 회사·총주주의 이익을 해치거나 특정 주주만을 부당하게 유리하게 한다면 개정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및 업무상 배임 이슈가 제기될 수 있어 법률 리스크가 충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1차·2차 개정에 M&A 지각 변동…3차 개정 타격 가시화=3차 상법 개정으로 M&A 실무 전반에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사주를 활용한 M&A가 차단 되면서 새로운 거래 구조가 생겨나리라는 해석이다. 자본시장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자사주는 M&A 가격 조정과 거래 성사 가능성을 높이는 도구로 기능해 왔다”며 “상법 개정으로 이 같은 방식이 제약을 받으면 기존에 쓰이던 상당수 거래 구조를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다. KB금융은 2016년 현대증권(현 KB증권)을 인수하면서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주식을 주당 2만 3183원에 인수했다. 현대증권은 KB금융과 현대그룹 주식매매 거래 종결 후 자사주를 4분의 1 수준인 주당 6410원에 KB금융에 매각했다. 자사주를 제3자에 처분할 때 주주총회를 거쳐야 해 이런 거래는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1차·2차 상법 개정은 M&A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주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서 대주주 특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공개매수가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은 안다르 운영사 에코마케팅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유럽 최대 사모펀드 EQT파트너스 또한 더존비즈온 상장 폐지를 위해 약 2조원을 투입해 공개매수를 추진 중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대주주에게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급하고 끝나는 딜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공개매수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주주 차별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주 충실 의무가 도입되니 공개매수가 의무화하지 않았는데도 당연한 수순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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