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제작 임은정 대표 “천만 생각도 못 해…韓 영화의 새 기회 되길” [인터뷰]

‘지키지 못한 다음 세대’로 서사 확장
기획부터 참여…표절논란 ‘사실무근’
“좋은 사람들 모여 만든 좋은 결과”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 [쇼박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지난 6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2년여간 이어진 한국 영화의 ‘천만 공백기’를 깼다. 11일 현재 영화는 곧 120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는 개봉 당시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작품이자, 단종을 주인공으로 다룬 첫 영화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천만’이란 숫자는 누구보다 작품의 흥행을 바라 온 제작진조차도 상상도 못 한 결과다.

“천만의 꿈을 품기에는 어려운 시기잖아요. 지금도 어리둥절해요. 정말 감사함 밖에 없어요.”

고사 위기의 한국 영화에 ‘희망의 불씨’를 틔운 이 영화의 탄생에는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40)가 있다.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그가 제작자로서 만든 첫 영화다. 시작과 동시에 ‘잿팟’을 터트렸으니, 자신도 여전히 믿기 어려울 정도다.

11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임 대표는 “장항준 감독과 손익분기점(230만)의 두 배가 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나눴었는데, 정작 개봉일 숫자를 보니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겠더라”면서 “마음을 졸이다가 갑자기 훌쩍 목표치를 넘었을 땐 ‘어? 이거 우리가 생각한 거랑 너무 다르게 가는데?’란 생각에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다”라고 했다.

[쇼박스 제공]


임 대표는 그간 CJ ENM에서 10년간 영화 기획제작과 투자 업무를 맡다 지난 2023년 온다웍스를 차리고 독립했다. ‘왕사남’은 임 대표가 CJ ENM 재직 시절에 만난 시나리오다. 황성구 작가와 2019년부터 같이 기획을 시작해 2020년도에 초고가 나왔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당시 회사에서 제작까지 가지는 못했다.

이후 제작자로 독립한 임 대표는 그렇게 깊은 잠이 들었던 ‘왕사남’를 다시 꺼내 들었다. ‘새로운 사극’에 대한 확신이 제작자로서 그의 마음을 이끌었다.

“시나리오가 중단됐을 때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5년 안에 도전해서 꼭 만들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어요. 그것이 같이 일한 황 작가님과의 약속이자 책임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있었죠. ‘궁궐 사극’이 아닌 ‘민초 사극’은 대한민국 사극에서 많이 볼 수 없는 이야기잖아요.”

단종이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엄흥도란 인물이 그려내는 감동과 웃음의 스토리텔링은 영화의 흥행을 이끈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임 대표는 처음 기획을 시작했을 때 엄홍도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고, 시나리오가 점차 발전하면서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단종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임 대표는 “엄흥도가 갖고 있는 딜레마가 재미있겠다고 단순히 생각했다가, 너무나 정통성이 분명한 어린 왕을 통해서 ‘어른이 지켜줘야 하는 다음 세대의 미래’, ‘우리가 지키지 못한 가치관’이란 서사까지도 풍부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무엇보다 엄흥도와 단종의 이야기를 통해 사극은 타깃이 한정돼 있다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쇼박스 제공]


임 대표는 2023년 여름 각색한 시나리오를 들고 공동 제작사인 비에이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갔다. 그리고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투자 업무를 하면서 그는 오래전부터 각본가이자 ‘기억의 밤’(2017) 등으로 남다른 연출력을 보여준 장 감독을 ‘마음 속에 저장’해 뒀던 터였다. 하지만 그의 첫 제안은 거절당했다.

“장 감독님이 ‘리바운드’(2023) 이후에 성공하는 영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거절) 이유였어요. 저희 영화는 사극인 데다 심지어 비극이잖아요. 그런데 저도 제작자를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만약 영화가 잘 안됐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고, 그다음은 무조건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것 같아요.”

포기는 없었다. ‘만들어지면 너무 좋은 영화가 될 것’이란 업계 친구의 응원이 힘이 됐다. 그는 장 감독에게 또 한 번 직접 연출을 제안했고, 승낙을 받아냈다. 그렇게 뜻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영화가 완성됐다. 임 대표는 영화를 제작하며 함께했던 박윤호 PD가 했던 말이 ‘예언’이 된 것 같다며 곱씹었다. 기대치 않았던 흥행에는 결국에 사람이 있었다.

“박 PD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좋은 사람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만나서 만들면 결과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요. PD님의 그 말이 예언이 되서 이렇게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잘될 것이란 마음으로, 모든 의견이 유연하게 아이디어로 발전해 반영되는 현장을 보면서 ‘아 영화 잘될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 [쇼박스 제공]


박지훈을 ‘단종’ 역으로 추천한 것도 임 대표다. “새로운 배우, 그다음 세대를 나오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산업 종사자로서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 ‘천만 배우’ 유해진의 존재가 캐스팅에 힘을 실었다.

“‘약한 영웅’에서 박지훈이란 배우에 꽂혔고, 제작진들로부터 그가 성실한 배우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시장이 얼어있으니 신선한 배우를 만나고 싶어도 시도하기가 어려울 수 있었는데, 유해진 배우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으니 도전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여백은 상상력으로 채워졌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기록된 엄흥도는 영화에서 유해진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와 함께 단종의 청을 받아들여 그의 목에 맨 줄을 잡아당기는 등 죽음의 조력자 역할도 자처한다. 민감할 수 있는 창작과 각색은 숙고를 거쳤다. 기술 시사에도 영월 엄씨 종친회가 자리를 함께했다.

“제작자로서 가장 조심스러웠던 부분이기도 했어요. 불편하게 느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니까요. 영화는 단종을 기림과 동시에 엄흥도를 기리는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엄흥도가 단종의 죽음을 도와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잖아요. 과거의 그 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쇼박스 제공]


최근 불거진 시나리오 표절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참여했기에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임 대표는 “시나리오의 원안자도 있고, 각본가도 있으며 각색자도 있다”면서 “처음 한 줄과 시놉시스, 트리트먼트(시나리오 축약본)가 이들로부터 만들어졌고, 거기에 모든 계약과 회의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논란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제작 과정에서 적은 예산 탓에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임 대표는 “경제적으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데 뜻이 모였다. 미술팀, 의상팀 모두 이해하고 들어줬다”면서 “천만이 될 줄 알았으면 ‘당시에 더 (돈을) 쓸걸’이란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논란이 됐던 호랑이 컴퓨터그래픽(CG)은 수정 작업을 진행키로 했다. 이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공개될 버전에서는 새로운 ‘호랑이’를 만나볼 수 있다. 임 대표는 “이마저도 관객들이 만들어준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영원히 바꿀 수 없게 된다. 그 전에 갖게 된 너무나도 운이 좋은 기회”라고 했다.

[쇼박스 제공]


임 대표는 영화 흥행 이후 많은 영화인으로부터 인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계획하고도 하지 못하는 대업을 ‘왕사남’이 이뤄줘서 고맙다’는 인사다. 물론 ‘왕과 사는 남자’ 열풍으로 한국 영화가 다시 ‘봄날’을 맞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그는 이번 영화가 그에게 ‘기분 좋은 출발’이었던 것처럼, 한국 영화에도 새로운 기회이자 희망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인터뷰는 영화계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마무리됐다.

“새로운 창작자와 배우가 기회를 얻고 도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돼야 이 업계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 있어서 저희 영화가 기회를 만드는 것에 일조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한국 영화계에 정말 많은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준비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그만큼 기대가 큽니다.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희망’으로 갈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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