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 약화·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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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대법정 앞 로비. [대법원 제공]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인 대법관 수를 총 26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대법관 증원법(개정 법원조직법)도 나머지 사법개혁법(법왜곡죄·재판소원)과 함께 12일 공포된다. 법원을 중심으로 법조계에선 하급심 법관을 추가로 배치하지 않고 무작정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으로 재판 지연 문제가 해소되긴커녕 하급심을 되레 약화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이 법 시행에 따라 대법원 구성이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새로 임명하게 될 12명의 대법관을 포함해 임기 만료로 교체되는 대법관 10명까지 총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특정 대통령이 대다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는 점에서 사법부 독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개정 법원조직법은 대법관 수를 2028년부터 3년간 해마다 4명씩 단계적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존 법원조직법은 4조 2항에서 ‘대법관의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을 통해 이를 ‘26명’으로 바꿨다. 다른 사법개혁법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하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법원에 쌓이는 사건이 날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대법관 수 증원으로 대법원 심리가 충실해지면서 사회적 신뢰가 제고되고, 국민 재판청구권 보장을 실현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원 내에선 되레 하급심 기능이 약화되면서 사건 처리 흐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거듭 지적한다. 필연적으로 대법관 업무를 도울 재판연구관(법관) 수를 늘릴 수밖에 없고, 현재의 법관 정원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하급심 인력을 재배치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영재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던 지난달 국회에서 “필연적으로 하급심에 있는 우수한 판사들이 재판연구관으로 와야 하는데 이를 보충할 방법이 없어 하급심 약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헤럴드경제에 “현재 상고심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대법관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법관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대법관 증원을 통해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당사자의 권리구제가 실질적으로 구현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대법관 증원으로 인해 하급심 법관이 일시적으로라도 부족해진다면 대법관 증원을 통해 얻는 이익이 상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법원에서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선 국회의 책임이 오히려 더욱 크다는 지적도 법학계에서 나온다. 박재윤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원의 사건 적체는 상고허가제(대법원이 상고심에서 재판하는 사건을 선별적으로 고를 수 있는 제도)도입·상고법원(상고사건만 처리하는 대법원의 하급 기관) 설치 등 사법부의 숙원 사업을 국회가 제때 처리하지 못한 잘못이 더욱 크다”고 했다.
대법관 증원법으로 인한 더 큰 문제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다. 당장 이 대통령의 경우만 해도 임기 내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대통령 임기와 대법관 임기가 맞물리면서 절대 다수의 대법관을 특정 대통령이 임명하는 경우가 반복될 가능성도 당연히 남는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어떤 명분을 제시하든 대법관 증원은 정치권에서 대법관의 정치적 성향을 따지며 사법부, 특히 대법원의 힘을 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 같은 상황 자체를 사법부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5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했는데, 대법원 사건 접수 후 34일 만에 나온 결론이었다. 전례 보기 드문 속도로 대법원에서 빠르게 심리가 진행돼 결론까지 이어졌던 것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다른 사건 처리와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례적인 사건 처리가 되레 정치적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여당은 이를 수시로 거론하며 “사법개혁은 법원의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