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참정권 현실화 계기로 5년 뒤엔 당당하게 관심 쏟았으면
한국의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미국 서부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18일 오후 1시에 투표가 시작돼 19일 새벽 1시면 투표종료와 함께 개표작업에 들어간다.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남가주 한인들은 19일 점심 시간 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아침식사를 마칠 때 쯤 ‘한국의 17대 대통령 ○○○후보 당선 확정적’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정책대결은 사라진 채 유력 후보를 공격하는 네거티브 공세만 난무했다는 이유로 역대 최악의 대선으로 낙인 찍혔지만 미주 한인 동포들이 이번에 보인 관심의 정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았던 게 사실이다.
신문이건 방송이건 한국 대선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일쑤였을 뿐 아니라 지면과 방송 뉴스 시간의 태반을 차지한 것은 수용자, 즉 독자나 시청취자의 관심이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날 수록 로컬언론들이 이민사회 동포들의 관심을 한국 대선쪽으로 유도한 측면이 더 강했던 것은 아닌지에 혐의가 커지긴 했지만 그같은 시비는 닭과 달걀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고전적인 논쟁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사실 동포들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이벤트에 신경쓰는 문제는 옳으냐, 그르냐를 가릴 일은 아니다. 소모적인 입씨름을 벌이기 보다 이번 대선에 보여준 이상열기를 계기로 차제에 해외동포의 한국정치에 대한 관심과 그 효과· 영향 등을 학술적으로 연구 분석하는 작업에 나서는 편이 한결 생산적일 것이다.
터잡고 사는 땅이 다르다고 해서 조국 또는 모국이라는 이름으로 끈을 맺고 있는 나라의 정치상황에 억지로 무관심하라고 강요할 일도 못된다. 저마다의 관심사가 공통적으로 한국쪽에 쏠려 있다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그 또한 ‘동포사회의 시대정신’일 터이니 어쩌겠는가.
다만 그러한 관심이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이고, 관심의 결과는 또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과 통찰이 필요해질 따름이다. 정도가 문제라면 지나침의 까닭과 배경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이해관계 유무의 문제라면 한국의 정치경제가 동포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든가, 연결고리 같은 게 무엇인지 정리해서 객관화 계량화할 만하다.
거의 1년여 동안 지켜본 한국 대선 레이스에 대한 LA 한인들의 정서와 동향을 돌이켜보면 흥미로운 점이 짚힌다. 그것은 재외동포 참정권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기대감과 무관하지 않다. 명박 사랑이니, 정동영 후원회니 하는 대선 후보 지원 모임을 자천 타천으로 결성해서 주도하는 한인 인사들의 동태나 대선 관련 한국 정치 뉴스를 비중있게 다루는 로컬 한인 언론들의 보도행태에서는 어쩐지 본선 경주를 앞두고 워밍업에 열중하는 듯한 분위기가 짙게 풍기고 있다.
빠르면 당장 내년 3월에 실시되는 한국 총선부터 재외동포 참정권이 실현될지 모른다는 판이다. 그러니 이민 와서 쌓은 재력으로 정치권력의 한자락을 잡고 금의환향하겠다는 동포 1세대들의 귀소의식은 대선을 발판삼아 감출 일 없다는 듯 활개를 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맞물려 200만이 넘는다는 미주 동포사회에서 저마다가진 영향력을 과시하겠다는 듯한 동포 사회 언론사들의 기(氣)싸움은 또 어떤가. 현장취재라는 뉴스보도의 금과옥조같은 명분을 앞세워 커뮤니티의 사이즈를 감안할 때 대규모(?)랄 수 있는 특별취재팀을 서울에 파견해놓고 아침 저녁으로 대선 속보 경쟁에 여념이 없다.
어쨌거나 참으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한국의 17대 대통령 선거는 몇시간 뒤면 그 뚜껑을 열고 대한민국 헌정사상 10번째 청와대의 주인을 소개하게 된다. 그가 누구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새 인물에 의해 미주한인, 나아가 해외동포 사회가 지난 반세기를 훌쩍 넘는 발전과 권익을 갖게 됐다고 평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5년이 흐른 뒤 또 다시 맞이할 대선의 계절에는 모두가 보다 당당하게 관심을 쏟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황덕준/미주판 대표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