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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혹시 예금할 여유 자금 있어?”
얼마 전 한인은행에서 근무하는 후배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평소 부탁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녀석이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니 각 은행들이 예금 유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인은행들의 최근 분기 실적을 보면 대출은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예금은 소폭 상승 혹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인은행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준의 연이은 금리 상승 등에 힘입어 다양한 고금리 상품을 출시하며 상당 금액의 예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관련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대출력 증대와 여유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살 깎아먹기 식 경쟁에 잠재적 예금 고객이 분산 소진됐고 여기에 연준의 금리 인하, 뱅크오브아메리카나 시티, 웰스파고 JP모건 체이스와 같은 대형 은행들의 이자율 맞춰주기 ‘프라이스 매칭’ 서비스 그리고 고금리를 앞세운 인터넷 은행 및 핀테크 기업의 가세로 예금고 증대는 지난 수년래 가장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실제 구글링을 조금만 해봐도 한인은행 보다 1% 이상 높은 이자율을 보장하는 금융기관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이들 기관은 최소 유지금액이나 예금 유지 의무 기간 그리고 인출 관련 페널티 등도 없어 입출금에 대한 부담이 한인은행 보다 적다.
한인은행들의 예금난은 각 지점의 예금고에서도 드러난다. 한인은행의 지점들은 예금고 1억달러를 우수 지점으로, 2억달러 이상을 수퍼지점으로 분류한다.
최근 한인은행들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수년 전에 비해 예금보유량은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올해 2분기 집계에 따르면 수년 전에 비해 1억달러 이상 보유 지점은 단 1개만 늘었고 2억달러 이상 지점은 오히려 1개가 줄었다. 2년전까지만 해도 예금고 1억달러 돌파 지점이 매년(전년동기 대비 기준)10%를 넘겼지만 올해는 사실상 정체상태다. 이는 한인들이 예금을 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다른 금융기관으로 이탈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다.
한인은행의 한 중견 지점장 A씨는 “대형은행과 인터넷 은행들이 한인은행의 주요 고객인 스몰비즈니스 오너에게 접근해 더 낮은 대출 금리에 한인은행과 같은 예금 금리를 제시하면서 고객 이탈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며 “지난 수십 년간 관계를 이어온 중장년층 한인고객들은 그나마 감성적인 접근이 가능하지만 1.5세나 2세 한인들은 숫자에 민감하고 언어도 불편하지 않아 냉정하게 등을 돌린다”라고 한숨지었다.
또 다른 한인은행의 지점장 B씨도 “한인은행의 본점이나 주요 지점의 경우 예금고가 사실상 최대치에 도달했다고 보면 된다”라며 “신규 지점이나 통합 지점의 경우에도 최근에는 새 고객이 유입돼 예금이 늘기 보다는 타 은행의 고객이 넘어오거나 A지점의 고객이 B 지점으로 옮기는 식이 많다. 특히 한인들은 지점장이나 특정 직원을 보고 예금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지점장이 A은행에서 B 은행으로 옮기게 되면 일부 고객의 예금도 A에서 B로 같이 옮긴다. 금액이 자주 이동해도 한인은행 전체 예금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