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거부·여성 역할 율법학자 결정·美 협력자 출국 ‘NO’…곧장 드러난 탈레반 본색

18일(현지시간) 총으로 무장한 탈레반 병사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위치한 한 뷰티숍 앞을 지나가고 있다. 뷰티숍 외부에 게시된 여성들의 사진이 검은색 페인트 등으로 훼손된 모습. [AFP]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20년 전 자행했던 ‘강압 통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고 공언했던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의 약속이 며칠 지나기도 전에 무색해지고 있다.

개방적 정부를 구성하고, 여성의 교육권과 경제활동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던 자신들의 약속을 탈레반 측에서 스스로 부정하는 발언과 행동을 한 데 이어, 미국 등 외국에 협력한 자국민에 대한 탄압에 나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 의사결정에 접근할 수 있는 와히둘라 하시미는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이슬람법(샤리아)에 따라 통치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탈레반 지도부 회의가 아프간을 통치하고 최고 지도자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전체 지도자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슬람 율법 학자가 여성의 역할과 여학생의 등교 허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여성이 히잡을 쓸지 부르카를 입을지, 아니면 아바야에 베일을 착용할지 그런 것은 율법 학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탈레반 의사결정에 접근할 수 있는 와히둘라 하시미(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이슬람법에 따라 통치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로이터]

부르카는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이고, 아바야는 얼굴을 뺀 목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검은색 긴 통옷이다.

이는 탈레반이 대변인을 통해 밝힌 입장들과 많은 부분이 상충된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완전히 장악한 지난 15일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 일변도가 아닌)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며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 말했다.

실제로 아프간 전역에선 벌써부터 탈레반의 만행이 시작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프가니스탄 타크하르주 주도 탈로칸에서 한 여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고 거리에 나섰다는 이유로 탈레반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모습. 부모와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여성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있다. [폭스뉴스]

폭스뉴스는 아프간 타크하르주 주도 탈로칸에서 한 여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고 거리에 나섰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총살을 당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도시에서도 탈레반이 부르카로 몸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식료품을 사러 나온 여성을 위협해 다시 집으로 들여보내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미국을 비롯해 외국에 협력했던 아프간인에 대한 복수가 없을 것이라던 탈레반의 약속 역시 흔들리고 있다. 아프간전(戰)에 협력한 현지인을 국외로 대피시키려는 작전을 탈레반이 가로막은 사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 CNN 방송은 미군이 통제 중인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내부와 달리 탈레반이 관할 중인 외부에선 미국의 입국 허가증을 제시한 남성의 공항 진입이 탈레반에 의해 제지된 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18일(현지시간) 총으로 무장한 탈레반 병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AP]

독일 언론 빌트도 탈레반이 카불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외국인에게만 공항으로 가는 길을 터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이 카불 공항 출입 허용 여부를 결정할 때 “외국인은 예스(Yes), 아프간인은 노(No)”라는 기준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국외로 탈출하려 카불 공항으로 몰려드는 아프간인을 해산하기 위해 때때로 공중에 총을 쏘면서까지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갑자기 총, 채찍, 칼, 곤봉 등을 꺼내 들고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CNN의 클라리사 워드 기자는 공항 밖 상황에 대해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사방에 탈레반 전투원이 있다”며 “탈레반이 사람을 겨냥해 총을 쏘고 있진 않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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