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상생문화 산실…장흥·영암·나주의 리더들

장흥 사람들이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소등섬의 일출.

“밭 갈고, 글 읽어라.” 얼핏 평범한 가훈 같지만, 반상의 구분이 뚜렷했던 조선시대엔 밭 가는 자, 글 읽을 필요가 없고, 글 읽는 자, 밭 갈 이유가 없었기에, 매우 파격적인 주문이다. 장흥위씨 후손들이 지역주민들과 상생하는 장흥 관산읍 방촌리는 양반도 과학영농, 경세제민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는, 수백년 공동체 정신으로 유명하다. 반계공 위정명의 유훈에 따라 양반도 주경야독했고, 존재 위백규(웅천공파) 같은 실천형 실학자를 배출했다. 영암 영보촌에선 세종-문종 르네상스기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연촌 최덕지가 뒤늦은 은퇴 이후 여민동락 향약 동계와 향촌문화의 씨앗을 뿌린 곳이다. 공동체문화는 의병 거병, 상생 경제를 실천하는 부국강병의 단초였다. 나주 함평이씨 참판공파의 이종인은 왜구 격퇴 등 무관 복무를 마친뒤, 영산강변에 나라를 생각하는 선비들의 철학살롱을 고향에 지었고, 손자들은 공동체 상생 문화의 산실인 동계를 설립했다. 어수선한 요즘, 상생 공동체 문화가 어느때 보다 강조되는 상황에서, 장흥·영암·나주의 뜻있는 리더들이 자세를 낮추고 백성들과 상생했던 모습은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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