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고” ‘반상 떠난 가르침’ 사강회의 이상향

장흥위씨 반계종가 오헌고택 출입구[문화재청]

전남 장흥의 명산 천관산 동편마을 관산읍 방촌리엔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 94기가 있고, 국방을 위한 회주고성 성터가 남아있다. 신라조, 고려조에는 장흥(회주)을 통치하는 중심이었다.

16세기 가문의 파가 여러 갈래 나뉘었지만, 반계공파, 웅천공파, 관산파 등 후손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산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을 것,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라”는 반계공 위정명(1589~1640)의 교훈은 반상의 구분을 초월한 상생의 가르침이다.

장흥위씨 후손들은 장천재 등에서 가학 교육에 힘써 존재 위백규(1727~1798) 같은 실천하는 실학자를 탄생시켰고, 주경야독 공동체 사강회와 향촌 규약을 만들었다.

1월과 8월을 제외하고 매월 1일과 보름에 강회를 연다. 30세 이하는 각기 정해진 책을 가지고 평상시의 의식대로 나아가 내용을 외운다. 아이들은 소학과 격몽요결 등을, 8세 이하는 육갑(六甲)을 외운다. 이후 의심나거나 모르는 곳을 질문한다. 친족 중심의 계원이 아닌 사람도 사강회에 들였다.

농규(農規)는 밭 갈 힘이 있는 자는 스스로 밭을 갈고, 감당할 수 없는 자도 거름을 주고 북을 돋는 일을 도와준다. 여름에는 매번 아침을 먹고 나서 각자 도롱이에 삿갓, 호미와 낫, 그리고 읽어야 할 책과 붓통을 갖추어 일직(日直)의 밭에 모인다.

오전 9-11시 밭 갈기를 중지하고 시원한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데,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어떤 이는 글씨 연습을 하며 어떤 이는 신발을 짜되, 게으르게 낮잠을 자서는 안 된다. 비가 오는 날에는 강당에 모인다. 매번 겨울이 되면 돛 자리 짜는 일을 겸한다. 과거 공부에 전념하는 자는 예외로 한다.

향촌에서 나온 시문을 보면, 양반이 허드렛일을 해보지 않고는 나올수 없는, 상민이 글공부를 하지 않고는 나올수 없는 자연주의 리얼리즘, 체감도 높은 글들이 많다. 존재 선생은 1767년 41대 사강회 대표로 공동체를 이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로선 매우 혁명적인 경제인문공동체였다. 사학자들은 최근 사강회가 지향했던 것은 ‘이상향’이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반계종가는 20세기까지 300~400년간 종손들이 살아온 일대기를 적었다. ‘위씨세고-12세유고’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안보 등이 세세하게 기록된 엄청난 사료이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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