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화장품서 생필품까지…배달, 방구석경제의 실핏줄 [배달원 40만명 시대]

‘새벽배송 1박스 (문 앞) 배달 완료됐습니다’

아침 7시, 당신이 잠든 사이 도착한 새벽배송이 완료됐음을 알리는 문자가 온다. 오전 11시, 배달앱으로 주문한 점심이 도착한다. 오후 1시, 외출을 위해 필요한 화장품을 H&B 스토어의 2시간 내 배송 서비스로 받아본다. 저녁 7시,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온라인 장보기에 주문한 물건이 도착한다. 저녁 8시, 아침 출근길에 당일 배송으로 주문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받아본다. 삼시세끼는 물론 옷, 생필품, 화장품까지. 하루 안에 배송이 안 되는 상품을 찾는 일이 더 어려워진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확 바뀐’ 유통 혁신의 기원은 24시간 끊임없이 움직이는 배달원(라이더)들이 있어 가능했다.

코로나 이전 34만여명이던 배달원은 1년 새 6만명 가까이 늘어 4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늘어난 배달원 수만큼이나 배달원들의 운송 수단도 다양해졌다. 오토바이 뿐 아니라 승용차, 전동 퀵보드, 자전거 등을 타고 일하는 배달원이 늘었다. 두 다리만 있어도 배달할 수 있는 도보 배달도 등장했다. 배달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지정,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도 늘었다.

▶배달원 40만명 시대…1년 사이 대폭 증가=1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택배·배달음식 등 배달 수요가 늘어 배달원 수도 10% 이상 늘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배달원 취업자 수는 39만명으로, 2013년 조사 이후 최대 수준이다. 1년 전인 2019년 하반기(34만9000명)보다는 11.8% 늘었다.

이처럼 배달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택배·배달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덕이다. 코로나19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외출을 삼가는 분위기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이에 매장에 가 쇼핑을 하거나 외식을 하기 보다 집에서 온라인몰을 이용하거나 배달 음식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특히나 배달앱들이 치열해진 시장 상황 속에서 속도 경쟁이 시작되자 배달원 구인 수요도 그만큼 증가했다.

이와 함께 젊은 층에 국한됐던 배달앱 이용 고객이 중·장년층으로 확대된 점도 배달 수요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2019∼2020년 하나카드의 신용·체크카드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배달 앱 결제금액 증가율은 50대가 163%를 기록, 가장 높았다. 40대·60대 이상이 142%로 뒤를 이었다. 이 외에 온라인 결제금액 역시 지난해 30대 이하는 전년 대비 24% 증가한 데 비해, 40대 이상은 49%로 훌쩍 뛰었다.

▶판 커지는 ‘빠른 배송’…“배달원, 더 필요”=배달원 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증가하면서 40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유통기업이 즉시 배송 서비스(Quick commerce) 시장에 주목하면서 배달원 수요가 더 늘었기 때문이다. 즉시 배송 시장은 ‘온라인 마트’를 지향하며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한 B마트·요마트로 판이 커졌다. 지난 7월에는 쿠팡이츠도 서울 송파구 지역에서 쿠팡이츠마트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딜리버리히어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B마트는 지난해 매출만 1억700만유로(약 1417억원), 주문건수는 1000만건을 기록했다.

편의점·슈퍼마켓·H&B 스토어도 더 빠른 배송에 힘쓰고 있다. GS리테일은 편의점 GS25와 GS수퍼마켓 배달 주문 전용 앱인 ‘우딜-주문하기’를 출시한 지 4개월 만에 40만건(누적 기준)의 주문을 받기도 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는 지난 2월부터 ‘1시간 배송’을, 롯데슈퍼도 서울 강남권에서 주문한 물건을 1시간 내에 배송해주는 ‘퇴근길 배송’을 운영 중이다.

CJ올리브영의 3시간 내 배송 서비스 ‘오늘드림’ 주문 건수는 배송 평균 시간을 45분으로 단축하며 지난해 전년 대비 12배 증가했다.

배달앱 간에 ‘단건 배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단건 배달은 배달원 한 명이 한 건의 배달만 빠르게 수행해 배달 시간을 30분 이내로 줄이는 배달 서비스다. 쿠팡이츠가 한 건당 한 집만 배달하는 ‘단건 배달’로 순식간에 배달앱 3위를 차지하자, 배달의민족도 단건 배달 서비스 ‘배민1(one)’을 론칭했다.

▶드론·로봇…첨단 기술로 고도화=배달 시장에 빨리 안착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배달원이 미처 못가거나, 까다로운 배달을 수행하기 위해 로봇·드론 배달을 도입하고 있는 것. 도미노피자는 오는 10월까지 세종시를 대상으로 드론 배달을 시작했고, 이후 서울 및 수도권 지역으로 확대 운영을 검토 중이다.

GS25는 특정 점포에 한해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직접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시작했다. 배달 로봇은 스스로 도착지 위치 및 주변 환경을 학습하고 목적지까지 최단 거리로 자율 주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위해 기존 배달원의 처우 개선을 보장하는 기업도 있다.

SSG닷컴은 네오센터·PP센터 배송을 실시하는 운송사들과 ‘배송 협의회’를 정례화하고, 배송기사의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SSG닷컴 배송 협의회는 지난 6월부터 코로나19로 배송 물량이 증가한 것을 반영해 추가 수당 지급 및 기본 운송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한 번 소비 행동을 바꾸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혁신이 주는 효용이 크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관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최근 배달원의 근무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만큼 소비자의 편의성·이익과 배달원의 처우 사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기업의 중대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김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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