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최대 5700명↑…“지방대 재정지원 확대”[종합]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 모식도. [교육부 제공]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정부가 2031년까지 향후 10년간 15만명의 반도체 인력 양성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이를 위해 수도권·비수도권 등 소재지에 상관없이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풀기로 했다.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학과 학부 정원이 1300명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비수도권 대학에는 재정지원을 강화한다. 직업계고 등을 포함하면 관련 학과 정원은 최대 5700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을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반도체 산업 성장에 따라 신규 산업인력 약 12만7000명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박사(6.8%)와 석사(5.7%) 학력의 인력 증가율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산업 핵심이자 국가 안보 자산인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급부상되는 가운데 세계적인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인재 양성 필요성이 커져서다. 올해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인 1313억달러(약 172조원)로 예상된다.

현재 직업계고·대학·대학원에서 배출되는 반도체 산업인력은 연간 5000명 수준이다. 현행 공급 체계로는 향후 인력난 심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2020년 기준 ▷직업계고 약 1300명 ▷전문학사 1399명 ▷학사 1928명 ▷석·박사 431명의 인력이 배출됐다.

교육부는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 한해 학과 신·증설 4대 요건(교지·교원·교사·수익용기본재산) 중 교원확보율만 만족할 경우 정원 증원을 허용할 예정이다. 국립대의 경우 행정안전부, 기재부 등과 협의를 거쳐 교수 정원이 배정되는 점을 고려, 전임교원 기준을 기존 80%에서 70%로 완화한다. 또 반도체 계약학과의 모집정원·한도, 권역제한 기준 등도 올해부터 기존 규제 적용 제외 대상이다.

대학 내 계약정원제도 도입된다. 계약정원제는 대학에 기존 설치된 첨단분야 학과 내 별도 정원을 한시적으로 추가할 수 있도록하는 유연화 조치다. 교육부는 계약학과 설치·운영규정 개정을 고시로 추진해 계약정원제 도입 근거를 마련한다.

반도체 특성화대학·특성화대학원 지원안. [교육부 제공]

직업계고 학과를 개편하고, 교육역량이 우수한 대학 20곳을 반도체 특성화대학·대학원으로 지정한다. 이렇게 되면 ▷석사 1100명 ▷학사 2000명 ▷전문학사 1000명 ▷직업계고 1600명 등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이 최대 5700명 늘어나게 된다.

학부에서 증원이 예상되는 2000명 가운데 상당 부분은 수도권 대학이 증원할 것으로 보인다. 김일수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은 “40개 대학에 (반도체학과 학부 증원) 수요 조사를 한 결과 수도권은 14개교가 1266명, 지방은 6개교가 315명 증원 의향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신입생 충원난을 겪는 지방대학의 반발이 예상되는 것과 관련해 김 실장은 “수도권은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두고, 비수도권은 여기에 더해 재정지원을 수도권보다 더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산업현장 인력을 교수자원으로 활용하도록 규제를 푼다. 첨단산업 현장전문가가 대학의 강사, 겸임, 초빙 교원으로 임용이 쉽도록 교원 자격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관련 법령 제정과 개정을 통해 첨단분야에 한해 교원 임용 자격을 학칙 또는 법인 정관으로 정하도록 특례 신설에 들어간다.

향후 10년 반도체 산업 인력 전망. [교육부 제공]

우수 교원 채용인건비 상한 미적용(반도체특성화대학 지원사업), 반도체 분야 현장전문가의 온오프라인 대학 출강 지원 등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 하반기 반도체 선도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강사지원, 교육과정 공동개발 등을 위한 업무협약을 진행 중이다. 직업계고 등에도 전현직 전문가들로 구성된 고숙련 반도체 교육지원단(가칭)이 활용될 전망이다.

정부는 반도체 등 첨단분야는 교육부 승인심사를 거쳐 학사학위과정이 100% 온라인 운영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현재에는 훈령에 따라 국내-외국대학 공동학사과정만 100% 온라인 운영이 가능하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온라인 학위 과정 100%일 경우 수업의 질이 우려된다는 질문에 대해 “온라인 학사 학위 과정 100%은 수업 방식이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해 첨단 분야에 한해 규제를 해소한다는 차원”이며 “반도체 관련 교육은 교실 강의와 현장 지식을 얻는 실습 등이 필요하므로 100% 온라인으로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반도체 특성화대학원을 신규 지정하여 운영 관련 규제 철폐와 함께 대규모 재정을 집중 지원할 예정이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반도체 특성화대학원을 지정하고 세계 최고 수준 AI반도체 분야 연구자를 양성하는 인공지능 반도체 대학원에 2023년부터 6년간 총 165억원을 지원한다. 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반도체 기업 협력 과정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반도체 소재부품 대학원 전공과정을 확대한다.

과기부는 반도체 설계구현 인력 확보를 위해 교육, 멘토링, 인턴십 등을 수행하는 학부연구생을 선발해 2년 과정 교육을 지원한다. 해당 과정은 내년부터 연간 50명, 2024년부터는 연 100명 대상이다.

반도체 인재양성 저변 확보를 위해 과기부와 산업부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개발에 2029년까지 총 1조96억원, PIM(프로세스 인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2028년까지 4027억원을 투자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처럼 수도권 대학 등을 포함해 반도체학과 학부 정원을 늘리는 등의 ‘반도체 인력 양성방안’을 내놓은 데 대해 지방대의 반발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학과 신·증설 시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비수도권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우종 지역대학총장협의회장(청운대 총장)은 이번 방안에 대해 “그동안 지방대는 교수들과 싸워가면서 학과 통폐합·구조조정을 해왔는데 수도권 대학들은 그로부터 자유로웠다”며 “수도권 정원이 순증하면 지방 학생들이 결국 다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하지 않으면서 수도권 정원을 늘리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다. 첨단 인재를 양성하고 싶으면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며 “반도체 인재 양성은 4년 동안 교육하고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하고, 방안도 장기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박 부총리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지방대학 시대를 연다’는 게 있다”면서 “지방대는 수도권보다 여러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어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같이 재정지원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장미란 교육부 산학협력정책관 직무대리도 “반도체 분야 중 소재·부품·장비 관련은 지역 대학에서도 충분히 육성할 수 인력으로 보이고 정부가 지원하는 조기취업형 계약학과를 현행 15개 정도에서 내년 중소기업 위주 계약학과 위주로 20개 이상으로 늘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인력 지원 관련 지방대의 반발에 대해서 교육부는 재정적인 지원을 집중적으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실장은 취재진과 질의에서 “예를 들어 수도권 반도체 특성화 대학에 30억원을 지원한다면 지방 반도체 특성화 대학엔 60억원, 2배 정도를 집중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 중”이라며 “서울대반도체공동연구소가 컨트롤타워, 지방에서는 4개 상정해 권역별 허브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어 “구체적으로는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나 블록펀딩 방식에 의한 예산지원, 혹은 선 재정지원·후 성과관리 등을 지방대학 지원 특별협의체에서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인재 양성 방안과 관련해 10년간 지원될 구체적인 예산 액수를 묻는 질문에 교육부 관계자는 “인재 양성 방안에 나온 사업을 뒷받침할 예산을 충분히 반영할 것이나 구체적 액수는 내년 예산부터 확정돼야 할 부분”이라며 “결국 인재양성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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