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고학회, 잇단 문화재 훼손에 정부,법원 질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최근 춘천 중도, 김포 장릉 주변, 김해 구산동, 경주 죽동리, 서울 송파구 등지에서 문화재 파괴 행위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고고학회와 24개 지역 및 분야별 역사학회는 29일 성명을 내고, 정부와 지자체가 문화재 보호·관리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29일 발표했다.

김해 고인돌 훼손
김포장릉 경관 훼손으로 유네스코 유산 등재 목록에서 탈락위기에 놓였다.

이들은 “세계가 인정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김포 장릉의 경관 훼손에 대한 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 세계 최대의 김해 구산동 고인돌에 대한 김해시의 무지한 파괴 행각, 경주 죽동리 보물 청동기 출토지에 대한 경주시의 무심한 파괴 행각,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한성백제 도성의 중요한 집자리가 문화재가 아니라는 송파구청장의 행정소송 제기 등 안일함과 무지, 나사 풀린 문화재 정책과 행정으로 말미암아 있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화재 파괴가 전국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의 자긍심이자 국가 정체성을 심어주는 소중한 자산인 문화재가 정부와 지자체의 어이없는 보존 관리 소홀로 무참히 파괴·멸실되는 참혹한 사태가 전국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문화재는 온 국민이 공유하여야 할 민족적 자산이자 공공재로서 그 보존 관리는 국가와 그 권한을 위임받은 지자체가 철저히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문화재 파괴·훼손을 묵과 또는 조장하고, 심지어 지자체장이 나서서 문화재를 멸시하는 등 국민들로 하여금 문화재의 가치와 그 보호·관리의 중요성을 몰각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참담할 따름“이라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김포장릉= 세계문화유산 김포 장릉의 문화재 경관 훼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관 규정과 문화재보호법을 중대하게 위법했음에도 개발업자와 지역 주민만을 위한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린 법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법원인가? 극소수 개발업자와 입주민의 이권 챙기기에만 골몰하는 법원인가?

▶한성백제= 송파구청장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대국가, 한성백제의 도성에 걸맞은 문화재 정책과 행정을 추구하기는커녕, 한성백제 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정부의 문화재 정책에 재를 뿌리고, 주민의 이익과 편의를 볼모 삼아 문화재를 깡그리 업신여기고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백제 주민들이 살았던 집자리가 문화재가 아니라는 궤변으로 행정소송까지 했으니 이 나라 문화재들이 살아남을 리 만무하다. 백성들이 살았던 집자리가 보통 사람들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복원하는 중요한 문화재임에도 이런 궤변을 늘어놓으니, 그가 말하는 송파구 주민들을 위한 행정은 겉으로 포장된 가식에 불과하다.

▶김해 고인돌, 경주 죽동리= 김해 구산동 고인돌 파괴·훼손, 경주 죽동리의 보물 청동기 출토지의 파괴·훼손 사건은 지자체의 문화재 행정이 얼마나 안일하고 무지하며,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구산동 고인돌은 김해시가 복원·정비하는 과정에서 되레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해버렸으니 부끄러워 고개조차 들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지자체 문화재 행정의 현주소이다. 그런데도 경남도와 김해시는 재발 방지 노력은커녕 네 탓 공방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성명 배경= 이런 상황을 더 방치하고 묵과해서는 후손에게 길이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게 명약관화하다. 전국의 지자체가 앞장서서 문화재 파괴 행각을 벌이고 있으니, 그 행정이 미치는 일반 국민의 문화재 가치와 보호 인식의 저하를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후진적 문화재 행정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내고, 근본적인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문화재 보호·관리의 제도적 결함을 보완하여 선진 문화재 행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다음의 사항을 강력히 요구한다.

▶요구사항= 정부와 지자체는 매장문화재와 발굴 문화재에 대한 전문성이 가장 높은 문화재 발굴조사 담당자가 문화재 수리, 보수, 보존, 복원, 정비 사업에 반드시 참여하여, 문화재 파괴를 막고 원형의 문화재 보호·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개선에 즉각 나서라.

정부와 지자체는 자격 요건을 갖춘 문화재 전문인력을 의무적으로 확충하고, 지자체의 문화재 담당 공무원이 문화재 보호 관리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문화재 보호·관리 책임공무원제’를 입법·시행하라.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재 보존, 보수, 정비, 복원, 활용 시의 문화재 파괴·훼손의 지속적인 예방을 위해 해당 문화재 전문가를 위촉하여 ‘문화재 책임감리제’를 입법·시행하라.

▶참여단체= 가야사학회, 고구려발해학회, 대구사학회, 백산학회, 백제학회, 부산고고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학회, 영남고고학회, 중부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학회, 한국구석기학회,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한국문화유산협회,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한국미술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신석기학회, 한국중세사학회, 한국청동기학회, 호남고고학회, 호서고고학회, 한국고고학회(대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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