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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상장은행의 한 고위 간부인 Y씨는 출근하자 마자 다른 일은 제쳐놓고 은행의 예금고부터 체크한다. 그만큼 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의 집계 결과 SVB 폐쇄 이후 지금까지 중소형 은행의 예금 잔액은 무려 1190억달러나 감소한 반면 상위 25개 은행의 예금고는 670억달러나 불어났다. 기타 대출 및 체킹 어카운트 등을 모두 고려하면 중소 은행으로부터의 유출 금액은 5500억달러에 달한다는 집계도 있다.
이는 SVB나 시그니처뱅크 사태에 따라 중소 은행의 안정성에 불안을 느낀 고객들이 자신들의 자산을 대형 은행으로 옮기기 시작한 탓이다.
자산 규모 상 중소형 군에 속하는 한인은행들의 경우 아직까지 예금 인출 사태가 보고된 바 없지만 일부 자산가들이 미국 대형은행으로 계좌를 옮기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은 간간이 들린다.
고객들의 예금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이자율을 올려주는 것이다.
현재 한인은행들의 예금 상품 이자율은 대부분 4~4.5%대에 형성돼 있다. 미 대형은행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을 앞세운 핀테크나 로컬 크레딧 유니언과 비교하면 낮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핀테크와 크레딧 유니언들은 매주 이자율을 높일 뿐 아니라 조기 인출에 대한 페널티 폐지 등 추가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배너 광고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앨리 뱅크의 경우 SVB 사태 이후 11개월 만기 CD 상품의 이자율을 기존 4%에서 4.75%로 무려 0.75%포인트나 인상하고 조기 인출 페널티도 중단했다. 같은 금액을 예치한다고 가정할 경우 불과 며칠 사이 이자가 수백 달러나 늘어난 것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4.56%~5% 정도의 이자율을 주는 CD나 세이빙 계좌를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일부 크레딧 유니언은 6%가 넘는 상품까지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인은행 관계자들은 “1년전만 해도 대부분 예금 상품의 이자율이 0.5%에도 못 미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대출 금리 대비 부족한 이자율에 대한 고객 불만이 커지면서 상승세가 시작됐고 이제는 각 기관별 경쟁이 심해지며 매주 이자율이 올라가고 있다 “라며 “한인은행들도 고객의 이탈 가능성을 미리 줄이기 위해 이자율을 조금씩 계속 올릴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 월 단위로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인은행들은 이자율을 올려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인상폭에 대해서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인 상장은행들은 예금 상품 이자율의 최대 인상폭을 현재 금리 대비 최대 0.5%포인트 선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예대율 유지 등을 위해 예금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자율에 따른 지출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최대 한도가 0.5% 포인트 정도라는 것이다. 기간 역시 최대한 짧게 정해 추후 필요에 따라 순차적으로 정리하기 쉽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한인은행 고객 중 일부는 예금을 타 금융기관이 아닌 단기성 안전자산인 머니마켓펀드(MMF) 로 옮기고 있다.
머니마켓펀드란 자산 운용사가 고객들의 자금으로 펀드를 구성해 국채나 기업어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내고 이를 고객에게 돌려주는 상품으로 한인은행들이 제공하고 있는 일반 머니마켓과는 다르다..
상황에 따라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최근 MMF의 수익률이 10년래 최고 수준인 4%를 넘기고 있는데다 은행과 증시 모두 위험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 단기 국채(3개월) 등에 투자하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낮고 쉽게 인출할 수도 있어 유동성이 증가한다.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