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커플스, 어니 엘스, 비제이 싱, 데이비스 러브 3세, 미겔 앙헬 히메네스, 베른하르트 랑거…. 골프를 좀 아는 팬들이라면 아주 익숙한 이름들일 것이다. 이들이 젊은 시절 세계를 제패한 것도 수십 차례가 넘는다. 지금 이 선수들은 모두 만 50세가 넘어야 출전할 수 있는 시니어 투어, 정식 이름은 PGA 챔피언스투어에 속해서 대회를 뛰고 있는 중이다. 현장에 직접 가보니 예전의 레전드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젊은 피가 뛰는 PGA투어가 아닌 탓에 관중도 많지 않고, 그만큼 보안도 덜 심한 곳이 시니어 투어 현장이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이 조금은 배가 나온 편안한 모습으로 여전히 날선 스윙을 하고 있는 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최경주가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 투어에 입성했고, 이듬해 그 어렵다는 페블 비치에서 첫 승을 거뒀다. 놀라운 것은 그가 PGA투어에서 펼친 활약을 통해 총상금 순위 자격으로 평생 시드를 가지고 있는 점이다. 게다가 챔피언스 투어는 대부분 3라운드로 이루어지며 예선이 없다. 출전을 하면 꼴찌라도 무조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선수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일할 곳이 없어지는 것, 출전권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회를 뛸 수 있다 해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상금을 받지 못해 경비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선수들이 두번째로 두려운 상황이다. 최경주는 그 두가지가 모두 해결되어 있는 셈이다.
한국인 두번째로 챔피언스 투어에 진출한 양용은은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 우승자 자격으로 첫 해 시드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영구 시드가 없기 때문에 매년 상금 순위 54위 이내에 들어야만 다음 해 시드를 얻을 수 있다. 양용은은 우승을 하면 다음 해 시드가 주어지지만,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 영구 시드를 받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대회에서 강한 특유의 강점을 살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쟁쟁한 선수들이 심각하게 연습을 하고 우승을 향해 달리지만, 아무래도 이 곳 분위기는 여유로운 편이다. 기존 투어들은 참가 선수들이 많아 오전, 오후로 티타임이 나누어지고 날씨 상황이나 시간에 쫓겨 무조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시니어 투어는 시즌 동안 78명만 뛰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날 필요가 없다. 최경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정말 좋다고 웃었다.
한편, 시니어 투어는 따로 연습라운드가 없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이틀 동안 빡빡하게 프로암이 진행된다. 프로암으로 연습 라운드를 대신하는 셈이다. 루키 등 일부 선수들은 이틀 연속 프로암을 치는 경우도 많다.
대회에 따라 추억을 쌓기 위해 선수 가족들이 캐디로 동원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최근 끝난 시니어 PGA 챔피언십을 우승한 스티브 스트리커는 딸이 캐디를 해줘서 너무 특별했다며 우승 인터뷰를 하면서 목이 메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젊고 강한 선수들이 있는 투어, 새롭고 강한 것도 좋지만 챔피언들이 여유롭게 득실거리는 챔피언스 투어도 한번 관심을 가지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반짝이는 눈으로 연륜을 가지고 경쟁하는 그들의 골프에서 배울 것이 너무 많다.
〈KLPGA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