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소주와 맥주 진열대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화학·비금속광물·금속가공 등 제조업 부문에서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은 줄어드는데 인건비는 꾸준히 늘어나면서 기업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대면서비스 활성화로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고령층 근로자·서비스업 근로자 고용도 증가하면서 1인당 노동생산성도 팬데믹 이전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인건비 부담을 느낀 기업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 하나 생산에 필요한 노동비용(단위노동비용)이 꾸준히 오르면서 기업은 이를 소비자가격에 전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중 대표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6.8%로 전체(3.6%)의 1.9배를 기록했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제조업 생산성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비금속광물이 -9.7%, 화학 -6.8%, 1차금속 -3.2%, 금속가공 -2.7%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컴퓨터·전자·광학기기가 1.0%, 운송장비가 7.4%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이에 따라 제조업 부문 전체의 단위노동비용이 크게 올랐는데, 지난해 1~3분기 제조업 부문 명목임금상승률은 3.2%였지만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0.1%,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은 3.2%를 기록했다. 2022년엔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1.6%이었지만 지난해 들어 매출이 감소하면서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한은은 지난달 28일 게재한 ‘생산성을 감안한 기업의 노동비용 변화’ 블로그에서 이와 관련해 “1인당 노동생산성과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증가세는 모두 팬데믹 이전 추세에 비해 낮아진 모습”이라며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의 생산성 둔화가 상대적으로 뚜렷한 모습이다. 이는 2021년 3분기 이후 제조업 고용이 크게 확대됐는데, 작년 하반기 이후 제조업 업황 부진에도 고용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제공] |
서비스 부문 또한 명목임금상승률 대비 노동생산성이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높은 수준의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한은은 “대면서비스나 디지털 비집약적 서비스와 같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고령층 취업자의 비중이 높다”며 “기술을 활용한 노동대체가 어려워 단위노동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문을 중심으로 고용이 증가하면서, 경제 전반의 단위노동비용도 높아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전체 기업의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15~2019년 연평균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은 1.9% 수준이었지만, 2022~2023년엔 4.2%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제공] |
기업은 결국 인건비 부담을 3개월 간격을 두고 소비자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이 1분기 이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감안할 때, 노동시장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이 상존해 있다”고 분석했다.
임금상승률이 둔화하더라도 생산성 증가율이 이보다 더 낮다면 기업이 실제로 느끼는 비용 부담은 이전에 비해 오히려 커져, 이를 완충할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제품 가격 인상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합] |
실제 지난해 먹거리 물가는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더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중 대표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6.8%로 전체(3.6%)의 1.9배를 기록했다.
외식 물가 상승률도 6.0%로 1.7배로 조사됐다. 먹거리 물가 부담이 다른 품목에 비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상승은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식 물가는 2013년부터 11년 연속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높았다. 지난해 외식 물가 상승률은 전년(7.7%)보다 소폭 둔화했지만 2022년을 제외하면 1994년(6.8%) 이후 약 30년 만에 최고치다.
가공식품 상승률도 2년 연속 전체 물가 상승률을 웃돌았다. 2022년(7.8%)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8.3%)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외식 세부 품목 39개 중 36개가 전체 물가 상승률(3.6%)보다 높았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자체브랜드(PB) 가공식품 742개 중 44.1%가 지난해보다 가격이 올랐다.
이에 따라 코로나19와 고금리 장기화를 거치며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이 물가 둔화세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물가 전망에 대해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향후 추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고 노동비용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걸음’(last mile)은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