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당시에는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기에 지인의 얼굴과 나체사진이 합성된 사진 파일 제작을 제3자에게 의뢰한 경우 음화(淫畵·음란한 그림)제조 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진 파일은 문서, 도화(圖畵·그림)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이므로 형법상 ‘음란한 물건’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음화제조교사죄 등 혐의를 받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음화제조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7년 4월부터 11월까지 17회에 걸쳐 제3자에게 지인인 20대 여성 피해자의 음란 합성사진 제작을 맡겼다. 지인의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등을 제공하고 “나체 사진과 합성해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메시지를 전송했고, 지하철 등에서 불법촬영도 했다.
A씨의 범행은 그가 저녁 모임 중 휴대전화를 분실하면서 발각됐다. 휴대전화를 발견한 지인이 우연히 음란합성사진 일부를 확인했고, 휴대전화를 피해자에게 건네줬다. 피해자는 A씨를 경찰에 고소하며 휴대전화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그런데 경찰관은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하는 과정에서 A씨에게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는 등 절차적인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고, 불법촬영물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지도 않았다.
1심과 2심은 A씨의 모든 혐의(음화제조교사·불법촬영·명예훼손)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1심을 맡은 보통군사법원과 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은 A씨에게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의 혐의 중 명예훼손 부분을 제외한 음화제조교사·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이씨의 범행은 컴퓨터 합성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범죄 유형으로 이른바 ‘지인 능욕’이라고 불린다. 2020년 3월에야 성폭력처벌법 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 조항이 신설돼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사건은 2017년에 발생했다.
대법원은 우선, 직권으로 음화제조교사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부분 혐의는 원심(2심)에 잘못이 있어 파기를 피할 수 없다”며 “형법상 음화는 문서, 도화(그림), 필름 기타 물건 등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증거수집 과정도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면서 피해자에게 제출 범위에 관한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고, 별도의 불법촬영물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2차례 피의자 신문을 진행했다”며 “디지털 포렌식 과정에서도 A씨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거나 그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휴대전화에서 복원된 전자정보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안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