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 김재현 경감이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신장투석 환자를 송환하는 데 우리 경찰도, 캄보디아 당국도 부담이 컸죠. 혹시라도 잘못되면 후폭풍이 크잖아요. 송환할 수 있는 건강 상태라는 걸 확인 또 확인했습니다. 범죄자에게 아픈 게 무기가 돼서는 안 되니까요.”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에서 동남아 국가를 담당하고 있는 김재현(33) 경감은 지난 12월 캄보디아에 도피 중이던 A(48) 씨를 국내로 강제송환하는 데 그의 건강 상태가 가장 큰 변수였다고 말했다.
A씨는 피해자가 총 1230명, 피해액이 923억원에 이르는 캄보디아 부동산 투자사기 조직의 부총책이다. 친형인 총책을 비롯해 무려 34명이나 되는 공범들은 이미 국내에서 덜미가 잡혀 수사를 받고 있었지만, A씨는 캄보디아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의 역할은 프놈펜 현지에서 사무실을 조성하고, 전혀 관계없는 공사 현장을 찍고서는 실제 주택 공사가 진행 중인 것처럼 가장한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또, 캄보디아까지 현장 답사를 간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는 등 범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찰은 인터볼 적색수배서를 발부하고, 작년 8월부터는 A씨를 검거하기 위해 본격적인 추적에 돌입했다.
김 경감은 “캄보디아에 거주 중이라는 게 확인된 이후 검거 작전을 세우는데 피의자가 투석 환자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다만 진단서 상에는 투석받는 환자라는데, 그가 실제로 아픈게 맞는지부터 확인이 필요했다. 현지에서는 얼마든지 서류나 정보조작이 가능한 환경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피의자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송환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변수를 제거하는 지난한 작업이 시작됐다. 캄보디아 경찰주재관과 한국대사관, 현지 경찰 정보국과 긴밀한 소통이 이뤄졌다. 아무리 수사와 처벌이 필요한 범죄자일지라도 우리 국민을 안전히 국내까지 송환하기 위해서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위험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 김재현 경감이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경찰은 캄보디아 정보당국으로부터 진단서와 실제 그가 투석을 받고 있는 사진을 입수해 분석에 들어갔다. 즉시 경찰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자문을 구했다. 의료진은 사진상 투석기계 등으로 유추해볼 때 실제 투석을 받는 것은 사실이며, 투석을 받은 후 이동은 가능한 상황이라고 결론지었다. 현지 첩보상으로도 그가 일주일에 두 차례, 화요일과 금요일 통원치료를 받고 있고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에도 시내에 자주 출몰하는 등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라는 사실이 뒷받침됐다.
다만 혹시라도 모르는 변수가 문제였다. 김 경감은 “실제로 캄보디아 현지 경찰이 자체적으로 검거를 상당기간 유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캄보디아 당국으로선) 외국인인 데다 검거된 사람을 수용하는 시설도 열악하고, 투석 등 건강관리가 안 되다보니 부담이 컸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입장에서도 데려올 때 아프거나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정말 큰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김 경감은 우선 검거부터 국내 송환까지 하루 안에 완료할 수 있도록 작전을 세웠다. 통상 캄보디아에서는 검거와 추방 사이 4주 안팎의 기간이 소요되지만, 현지 경찰과 협의를 통해 이를 당일로 단축시키기로 했다. 4주 간 수용될 시설에서는 투석이 불가능하기에 하루 빨리 국내로 송환해 수사와 건강 상태 체크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하겠단 방침이었다.
송환팀에는 김 경감과 함께 경찰병원에 근무하는 23년 경력의 투석 전문 간호사도 동행했다. A씨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심장제세동기, 산소포화측정기 등 기내 반입과 국외 반출이 까다로운 용품들을 가져가기 위해 항공사와 인천공항 및 현지 공항 항공보안팀과도 협의를 마쳤다.
캄보디아 부동산 사기조직의 부총책 A씨(오른쪽)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검거된 뒤 경찰병원 의료진으로부터 건강 상태를 점검받고 있다. [경찰청 제공] |
검거 당일이었던 지난해 12월1일. 미리 수사당국에 포섭된 담당 주치의가 투석 치료를 마치자마자 경찰주재관과 현지 경찰이 병원을 급습했다. 도주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예상했던대로 A씨는 곧장 건강 상태를 무기로 송환을 거부했다. 김 경감은 “함께 간 베테랑 간호사에게 ‘열 체크 제대로 한 것 맞느냐’ ‘가다가 잘못 되면 책임질 거냐’는 등 빌미를 삼았다”며 “원래도 송환 책임을 경찰이 지는 것이기도 하고, 준비도 철저히 했기에 자신있게 데려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를 성공적으로 국내 송환한 첫 사례로도 기록됐다. 검거 이튿날인 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A씨는 현재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김 경감은 지난 2018년 경위로 입직해 LH특별수사본부와 서울 용산경찰서 수사팀장을 거치며 굵직한 수사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부터 본청 인터폴국제공조과에서 동남아 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 경감은 “여러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도 ‘일이 되게’ 만들기 위해 해법을 찾아 나갔던 과정이었다. 현지 주재관과 한국대사관, 캄보디아 경찰, 경찰병원 의료진과의 협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면서 “앞으로도 인터폴 동료 직원들과 함께 주요 마약사범, 보이스피싱 총책 등 국외 도피사범 검거 송환에 총력을 다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 김재현 경감이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