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7일(현지시간) 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후 언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아시아판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76) 총리가 네번째 연임(합치면 5선)에 성공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비공식 결과에 따르면 7일 치러진 방글라데시 총선에서 하시나 총리가 이끄는 아와미연맹(AL)은 299석 중 최소 216석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대 대통령 셰이크 부르 라만의 딸인 하시나 총리는 1996년 첫 집권에 성공했고, 2009년 다시 총리가 된 후 지금까지 세 차례 연임했다.
하시나는 19번에 걸친 반대세력의 암살 시도에도 권력을 유지했으며, 2004년에는 수류탄 테러에 한쪽 귀 청력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아버지인 셰이크 부르 라흐만을 비판하는 것이 금지될 정도로 절대권력을 구축하고 있다. 야당은 하시나의 철권통치로 와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를 ‘아시아판 철의 여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하시나 정부의 가장 큰 성과는 경제 성장이다. 의류 산업 육성·인프라 확충 정책을 펼쳐 지난 15년 동안 방글라데시의 경제를 16배 성장 시켰다. 방글라데시의 현재 의류 산업 규모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이며 빈곤율도 절반으로 줄었다.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고, 물가 급상승에 따른 빈부 격차가 더 커졌다는 점은 역효과로 꼽힌다.
방글라데시 빈민가의 한 주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라가 발전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우리를 위한 발전은 아니다”라며 “이렇게 물가가 치솟으면 정직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은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시나 정권은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이번 선거가 야권 보이콧과 폭력사태 등 논란 속에 치러져 향후 정국 전망은 어둡다.
영국 BBC는 이번 선거를 두고 하시나 총리의 ‘원 우먼 쇼(one woman show)’라고 평가했다. 하시나와 맞붙을 경쟁자들은 사라진 지 오래여서다.
하시나 총리의 최대 정적이자 제1야당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을 이끄는 칼레다 지아 전 총리는 횡령 등 혐의로 연금된 상태다. BNP는 거물급 인사 외에도 2만명이 넘는 야당 정치인과 지지자가 방화·폭력 등 ‘가짜혐의’로 기소돼 사법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BNP와 일부 군소 정당은 “총리가 이전 두 번의 총선처럼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며 총리 사퇴와 중립 과도정부의 선거 주관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총선을 강행했다. BNP 등은 6일부터 48시간 동안 전국적인 선거 거부 운동에 나섰다. 이 여파로 투표율은 40%에 불과했다. 야당 보이콧이 없었던 2018년 선거에선 투표율이 80%를 넘었다.
하시나 총리는 투표를 마친 뒤 “나는 민주주의가 이 나라에서 계속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의 신뢰성을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며 “중요한 건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지 여부”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폭력사태도 잇따랐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37개 지역에서 폭력사태가 신고됐고, 5명이 체포됐다. 또한 수도 다카의 한 투표소 부근에서 사제 폭탄이 터져 4명이 다쳤다.
BNP를 이끄는 지아 전 총리는 “방글라데시 유권자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폭력 부정선거를 거부했다”며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하시나 총리가 나라를 일당 독재국가로 만들고 야당과 시민 사회의 입을 막는 철권 통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