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프레데릭 왓츠, '미노타우로스'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그간 여러 괴물을 봤지만, 이렇게까지 기괴한 녀석은 처음이었다.
목 위로 달린 건 분명 황소 머리였다. 목 아래 붙어있는 건 인간의 근육질 몸뚱이였다. 지금껏 본 어떤 괴물보다 크고, 억세고, 날렵했다. 녀석의 이름은 미노타우로스였다. 주위에는 어린 남녀의 것이었을 머리뼈와 넓적다리뼈 따위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온갖 악당을 다 때려눕혀 ‘어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테세우스였지만, 지금만큼은 그 또한 바짝 긴장했다. 테세우스 뒤에 붙은 청년들은 입을 틀어막은 채 몸을 떨었다. 그런데, 바다 건너 아테네의 왕자인 테세우스는 왜 크레타섬까지 와서 목숨을 걸고 있을까.
아테네 왕이자 테세우스 아버지인 아이게우스는 당시 크레타섬의 왕 미노스에게 약점이 잡혀있었다.
그건 미노스가 끔찍이 사랑했던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에서 죽은 일이었다. 마라톤 들판의 미친 황소를 잡겠다며 나선 뒤 되레 짓밟혀 숨진 사건이었다. 미노스는 아들의 죽음을 아이게우스 탓으로 돌렸다. 왜 내 아들을 더 뜯어말리지 않았느냐며 억지를 썼다. 미노스의 군대가 워낙 위협적이었기에, 아이게우스는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작자미상,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
"9년에 한 번씩, 아테네의 젊은 남녀 각 일곱 명을 바쳐라."
끝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뿌리치지 못했다. 미노스는 그렇게 데려온 이들을 미노타우로스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제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오면 더는 이러한 일이 없겠지요?" 그리고 또 9년이 돌아왔을 때, 그간 건장하게 큰 테세우스가 제물이 되길 자처했다. 아이게우스는 바닷길 앞에 선 아들에게 흰 돛과 검은 돛을 하나씩 건넸다. "그 괴물을 죽였다면 흰 돛을 달고 돌아오거라. 내가 멀리서 알아보고 축하 잔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채비를 한 테세우스는 그와 함께 제물로 뽑힌 청년들과 함께 배에 탔다. 아이게우스는 그날 이후 매일 바닷가 절벽에 섰다. 아들이 흰 돛을 달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귀스타브 모로, '파시파에' |
미노스는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외려 기뻐했다.
드디어 아이게우스도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게 될 것으로 믿었다. 그만큼 미노타우로스는 막강했다. 미노타우로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손수 빚은 초대형 황소,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 사이에서 나온 괴물이었다. 녀석에게는 포세이돈의 씨가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1826~1898)는 황소와 파시파에 사이 사랑을 노골적으로 그렸다. 사실 둘이 사랑에 빠진 건 포세이돈의 술수였다. 그에게 한 약속을 어긴 미노스가 괘씸해 이러한 보복을 한 것이었다. 화폭 밑에는 포세이돈의 명을 받고 나선 사랑의 신 에로스가 보인다. 이미 소임을 마친 듯 여유롭게 졸고 있는 듯하다.
미노타우로스는 출생하고 엄청난 속도로 컸다. 압도적 괴력을 품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 군림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성이었다.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건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무 뽑듯 들어올린 후 마구 잡아먹는 게 일상이었다. 미노스는 고민했다. 끔찍한 괴물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놈은 아내가 낳은 자식이었다. 차마 죽일 수 없었다. 미노스는 아테네 출신의 천재 건축가 다이달로스를 불렀다. 그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 제작을 명령했다. 미노타우로스를 그곳에 가둘 요량이었다. 굶어 죽지 않도록 종종 먹이만 던져줄 생각이었다. 역시나 미노타우로스는 미궁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녀석은 벽에 기대앉은 채 살아있는 제물만 기다렸다. "스스로 죽으려고 왔군." 미노스는 닻을 내리는 테세우스를 보고 혼잣말을 했다.
베네데토 제나리 2세, '미노스의 두 딸과 함께 있는 테세우스' |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미노스의 딸, 금발의 미인 아리아드네였다. 그녀는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덕이라는 설도 있다. 평소 자신을 극진히 대한 테세우스를 돕고자 아리아드네에게 사랑의 화살을 꽂았다는 이야기다. 베네데토 제나리 2세(1633~1715)가 테세우스, 그리고 미노스의 두 딸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한 명은 아리아드네, 또 한 명은 파이드라다. 쌍둥이와 다를 바 없는 둘은 모두 테세우스에게 깊은 호감이 있는 듯 보인다.
아리아드네는 아버지 미노스 몰래 테세우스를 돕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미궁 건축가 다이달로스를 찾았다. 그녀는 테세우스의 가장 큰 적이 미노타우로스가 아닌 미궁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미노타우로스를 어떻게 죽인다고 한들, 미로가 가득한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었다. “…그러니까 부디, 미궁에서 탈출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다이달로스 또한 내심 테세우스를 돕고 싶었다. 그 또한 자기 고향에서 온 영웅의 허무한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그 왕자에게 실타래를 주세요. 미궁 입구부터 실타래를 풀면서 가라고 조언하세요. 그 괴물을 죽일 수만 있다면, 돌아올 때는 바닥에 놓인 실만 따라가면 될 겁니다.” 그는 못 이기는 척 귀띔했다. “당장의 조건은 없어요. 나를 아테네로 데려가 아내로 삼겠다는 그 약속만 해주세요.”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슬쩍 건네며 한 말이었다.
테세우스는 그런 아리아드네 덕에 망설임 없이 미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한 냄새가 더 짙게 맴돌았다. 그림자는 점점 커졌다. 그림자의 주인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였다. 그간 만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리한 뿔, 억센 어금니, 날이 바짝 선 발톱 등 그놈의 온 몸이 흉기였다. 힘은 어찌나 센지, 찰나의 순간 허리가 반으로 접힐 뻔했다.
치마 다 코넬리아노,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
그래도 테세우스가 한 수 위였다.
영웅의 운명을 타고난 그를 죽이기에는 미노타우로스마저 역부족이었다. 치열한 힘 싸움 끝에 테세우스는 녀석의 뿔을 먼저 꺾었다. 뒤이어 어금니를 박살냈고, 팔다리를 부러뜨렸다. 마지막으로 목을 졸랐다. 미노타우로스는 미궁 전체가 흔들릴 만큼 길게 울다가, 이내 죽어버렸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타래를 따라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치마 다 코넬리아노(1459~1517)의 그림 속 무장한 테세우스는 칼을 들고 미노타우로스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려고 한다. 코넬리아노는 미노타우로스를 인간의 얼굴, 소의 몸뚱이를 갖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한참 전 시대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 또한 저의는 알 수 없지만, 미노타우로스를 코넬리아노처럼 묘사했었다.
조지 프레데릭 왓츠, '미노타우로스' |
오딜롱 르동, '키클롭스' |
조지 프레데릭 왓츠(1817~1904)의 '미노타우로스'도 흥미롭다.
왓츠는 오롯이 미노타우로스의 운명에 이입해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는 저 멀리에 뻗은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선 비애감과 처연함만 느껴진다. 사실, 미노타우로스의 입장에서만 보면 그의 삶은 기구했다. 미노타우로스는 태어나보니 이 꼴이었다. 야수의 본능이 큰 그는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무수한 막다른 길뿐인 미궁에서 평생을 쓸쓸히 살 것이었다. 왓츠는 그런 미노타우로스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느낀 듯하다. 이는 오딜롱 르동(1840~1916)이 식인 괴물 키클롭스를 재해석해 그린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 역사가 필로코로스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를 다소 다르게 설명한다.
테세우스가 쓰러뜨린 상대가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아닌, '타우로스(황소)'라는 별명을 가진 거구의 전사였다는 이야기다.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이 사내를 정부로 삼고 있었다는 말도 있다. 중간 과정이야 어떻든, 테세우스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테세우스는 약속대로 아리아드네와 함께 아테네로 향했다.
미노스의 음흉함을 알기에 야반도주하듯 은밀히 움직였다. 미노스와 크레타섬 병사들은 뒤늦게 이들이 탈출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이미 모든 함선에 구멍을 뚫어놓은 후였다. 그렇기에 추격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왜인지 아리아드네에게 아테네 땅을 밟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는 아테네로 가는 중 낙소스섬을 찾았다. 이곳에서 물과 식량을 채울 생각이었다. 고기와 과일을 잔뜩 채운 배는 곧 다시 움직였다. 이 안에는 테세우스만 있을 뿐, 아리아드네는 없었다.
존 밴덜린, '낙소스 섬에 잠든 아리아드네' |
귀도 레니,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
워낙 뜻밖의 일인 만큼,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간 데 대해선 또 여러 설이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테세우스를 협박해 그녀를 두고 가게끔 했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가 미모의 아리아드네를 아내로 삼고자 그랬다는 말이 따라온다. 테세우스가 현실적 문제로 아리아드네를 놓고 갔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쨌건 아리아드네는 아테네가 원수로 취급하는 적국(敵國)의 공주였다. 그녀가 왕비에 오른다면 후폭풍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눈물을 머금은 채 등졌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밖에도 테세우스의 단순한 변심설, 아리아드네가 배에 오르기 직전 갑자기 풍랑이 일었다는 설 등도 따라온다. 버려진 아리아드네는 다시는 테세우스를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돼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선 존 밴덜린(1775~1852)의 ‘낙소스섬에 잠든 아리아드네’가 유명하다. 아리아드네는 붉은색 천 위에서 마음 편히 자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테세우스도, 둘이 함께 타고 온 배도 없다. 잠시 뒤 눈을 뜰 아리아드네는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귀도 레니(1575~1642)는 디오니소스가 홀로 있는 아리아드네를 유혹하는 장면을 그렸다. 도도한 표정의 아리아드네는 못 이기는 척 손을 내미는 모습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테세우스는 생명의 은인을 저버린 격이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를 못마땅히 봤다. 이들은 테세우스가 아버지 아이게우스와의 약속을 잊게끔 했다. 테세우스는 계속 검은색 돛을 달고 항해했다. 살아 돌아오면 흰색 돛을 걸라는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당부를 떠올리지 못했다. 테세우스는 그리운 아테네 땅을 드디어 밟았다. 하지만, 처음 닿은 소식은 그를 절망하게 했다. "아이게우스 왕께서는 며칠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수평선에 걸린 검은색 돛을 보고…. 왕자님께서 죽은 줄 알고 바다에 몸을 던지셨습니다."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가 죽은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로 불렸다. 그곳이 오늘날의 에게해(Aegean Sea)다.
테세우스는 부왕 아이게우스에 이어 아테네 왕위에 올랐다.
테세우스는 더는 ‘어린 헤라클레스’로 불리지 않았다. 그는 적국의 횡포로부터 조국을 구한, 최악의 괴물을 무찌른 영웅 중 영웅으로 대접 받았다. 아테네에서는 그를 헤라클레스와 동급으로 칭할 정도였다. 테세우스는 왕이 되고도 모험을 즐겼다. 그는 이아손과 헤라클레스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아르고호 원정대에서 일원으로 동참했다. 이 덕에 우상 헤라클레스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어 또다시 영웅들이 집결한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도 함께 했다. 다만 눈에 띄는 행보는 없었는지, 이렇다 할 활약상은 없다.
테세우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모험은 따로 있다.
정예 여전사로 유명했던 아마존족 정벌이다. 이 일을 시작으로 늘 영광스러웠던 삶이 끝없는 내리막길에 서기 때문이다. 시작은 좋았다. 테세우스는 이들이 몰려사는 흑해 연안에 닿은 후 외려 당황했다. 그곳은 이미 폭풍우가 지나간 듯 황량했다. 알고보니 헤라클레스가 그의 열두 과업 중 하나로 이 일대를 휩쓴 뒤였다. 테세우스는 힘 빠진 아마존 여전사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가장 큰 수확은 여왕 안티오페였다. 테세우스는 그녀에게 반해 동침했고, 아들 히폴리토스를 얻었다. 이후 안티오페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이때부터 테세우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테세우스는 새로운 왕비를 또 맞이했다. 파이드라였다. 미노스가 죽은 후 크레타섬 왕이 된 아들 데우칼리온의 누이동생이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리아드네의 자매기도 했다. 양측 사이 악연은 넘쳐흘렀지만, 테세우스와 데우칼리온 모두 이 결혼이 적국을 동맹국으로 돌릴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히폴리토스와 파이드라' |
그런데, 아테네로 온 파이드라는 뜻밖 상대에게 격한 사랑을 느꼈다.
남편이 된 테세우스가 아닌, 의붓아들이 될 히폴리토스였다. 이 또한 아프로디테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히폴리토스는 사냥과 순결의 신 아르테미스의 숭배자였는데, 이에 질투를 느낀 아프로디테가 심술을 부렸다는 이야기다.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에게 노골적으로 구애를 하기에 이르렀다. 히폴리토스는 이에 대놓고 질색했다. 모욕을 느낀 그녀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여보. 당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히폴리토스가 제 방에서 저를 욕보였어요. 저는 수치심을 참을 수 없어요. 그래서 최후의 선택을 합니다.” 이러한 거짓 유서를 남긴 채.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1774~1833)이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 사이 벌어진 일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칼을 쥔 파이드라는 곧 무슨 일을 벌일 듯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막 사냥에서 돌아온 히폴리토스는 절대로 안 된다는 듯 정색하며 팔을 뻗는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 '히폴리토스의 죽음' |
테세우스는 히폴리토스의 결백을 믿지 않았다.
짐승 같은 아들 따위 필요 없으니 다른 나라로 갈 것을 명령했다. “포세이돈이시여. 부디 저놈을 죽여주소서!" 울먹이며 돌아선 아들의 등에 대고 저주까지 퍼부었다. 실제로 히폴리토스는 마차를 타고 해안을 달리다가 죽었다. 테세우스의 소원이 이뤄진 격이었다. 로렌스 앨마 태디마(1836~1912)가 히폴리토스의 마지막을 화폭에 담았다. 마차 끈에 발이 엉킨 그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눈을 감았다. 영웅의 아들치고는 굴욕적일 만큼 비참한 최후였다. 테세우스는 뒤늦게 아르테미스에게 진실을 들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펠라지오 팔라기, '헬레네를 납치하는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 |
"친구. 우리, 제우스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는 건 어떤가?"
어느 날, 테세우스의 둘도 없는 친구 페이리토오스가 그에게 제안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테세우스 못지않게 페이리토오스 또한 힘이 장사였다. 테세우스와 정면으로 붙었을 때 무승부를 끌어낸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었다. “우리가 부족할 게 무엇이 있는가? 우리 둘 정도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의 구슬림에 넘어갔다. 테세우스는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를 꼽았다. 제우스와 인간 여성 레다 사이의 딸이었다. 인간이 낳은 여인 중 가장 예쁘다는 명성의 소유자였다. 마음을 먹은 이상 데려오는 건 쉬웠다. 둘은 순식간에 헬레네를 납치할 수 있었다. 펠라지오 팔라기(1775~1860)가 두 사람이 헬레네를 붙잡는 모습을 그렸다. 이들 둘과 비교해 헬레네는 무척 앳되보이는데, 당시 그녀는 고작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에블린 드 모건, '트로이의 헬레네' |
페이리토오스가 점찍은 이는 씨앗의 여신 페르세포네였다.
제우스, 그리고 농경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의 왕비였다.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를 말렸다. 그럼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지하 세계로 갔다. 교활한 하데스는 두 사람이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저기 두 의자에 앉아있으면 페르세포네를 데려오리다.” 하데스는 이들을 친절히 대했다. 그게 함정이었다. 그가 권한 건 '망각의 의자'였다. 한 번 앉으면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장치였다. 지하 세계에 왜 온지도 잊은 채, 나아가 그간 어떤 삶을 살았는지조차 모조리 망실한 채 깊이 잠드는 의자였다. 영원히 이곳에 갇힐 뻔한 테세우스를 도와준 이가 헤라클레스였다. 훗날 헤라클레스는 열두 과업 중 마지막 과제로 케르베로스를 잡기 위해 지하 세계를 찾는다. 그곳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테세우스를 보고,별생각 없이 쑥 잡아당겨 그를 구해줬다. 괴력의 소유자답게 테세우스의 엉덩이 살을 뜯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페이리토오스는 살리지 못했다. 감히 여신을 납치하려고 한 죗값은 훨씬 무거웠다.
세상 빛을 보는 게 얼마 만인가.
테세우스가 잡혀있는 동안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테세우스가 없는 사이 헬레네의 오빠들이 군대를 끌고와 아테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온 백성이 이를 테세우스 탓으로 보고 있었다. 이제 아테네에서 테세우스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더는 왕으로도, 영웅으로도 존경받지 못했다. 돌아온 그는 무책임한 군주, 여색에 찌든 난봉꾼 취급만 받을 뿐이었다. 결국 아테네에는 새로운 왕이 들어섰다. 테세우스는 이를 막을 힘도, 명분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스키로스섬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이 나라가 그의 무덤이 될 줄은 그도 몰랐다. 스키로스섬의 왕 리코메데스는 테세우스를 경계했다. 그가 이곳에서 권력을 쥐고 재기를 꿈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죽여버렸다. 해안 절벽을 걷고 있는 테세우스를 밀어 수장시켰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역전의 용사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아테네인들은 그런 테세우스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에 대한 상처가 깊었다.
그런 아테네인들이 테세우스를 숭배하게 된 건 몇 세대가 지난 후였다. "그건 분명 테세우스 왕이었습니다." 아테네 등 그리스군과 페르시아군이 맞선 마라톤 전투에서 수많은 병사는 테세우스의 혼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가 페르시아군에 맞서 앞장서 싸운 덕에 이길 수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그제야 테세우스의 뼈를 수습해 아테네로 옮겼다. 이들은 뒤늦게 그를 위한 장례식을 성대히 치렀다.
〈참고 자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현대지성
그리스 로마 신화,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파랑새
테세우스 이야기, 뮈리엘 자크, 이숲
〈후암동 미술관 신화 편 읽는 순서〉
〈시즌 1 :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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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네 엄마 뼈를 던져라” 화들짝 놀란 명령…울면서도 할 수밖에[후암동 미술관-데우칼리온 편] (2023. 10. 7.)
〈시즌 2 : 헤라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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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 : 테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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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편〉
10)“제가 봤어요” 女납치 순간 밀고했다가…이렇게까지 ‘보복’ 당할줄은[후암동 미술관-시시포스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