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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본인이 만든 식초가 파킨슨병에 특효라며 1병에 300만원에 판매한 업자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재판하라”고 판단했다. 원심(2심)은 업자 A씨가 식품위생법상 영업등록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A씨에게 이러한 의무가 없고, 관할 관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고 봤다.
재판 결과에 따르면 업자 A씨가 만든 식초는 치료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환자의 위염 증상을 악화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1·2심은 사기·식품위생법 등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2심)에 식품위생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A씨 사건에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에 대한 판결을 확정하는 대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4월, 한 온라인 카페에 “본인 노모가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데 직접 만든 식초를 마시고 호전됐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보고 피해자가 연락하자, A씨는 “병원 의사들과 식초를 연구 중이다. 효능이 뛰어나 유명한 저널에 투고를 했고 노벨상 감으로 이야기된다”고 말했다.
장모의 파킨슨병 증세를 낫게 하고 싶었던 피해자는 A씨의 말을 믿었다. 해당 식초를 1200만원 상당에 구매했지만 거짓말이었다. 해당 식초는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고, A씨가 의사들과 식초를 연구하거나 연구 결과를 의학 저널에 투고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1심과 2심은 A씨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사기, 식품위생법 위반 등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1·2심은 A씨가 피해자를 속여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게 맞고(사기), 영업등록이 요구되는 식품 제조·가공업을 하면서도 영업등록을 하지 않았다고(식품위생법 위반)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식품위생법 위반에 대한 판단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가 식품 제조·가공업이 아니라 즉석판매 제조·가공업을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전자라면 영업등록 의무를 따라야 하지만 후자라면 단순히 관할 관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
하급심은 A씨가 식초를 제조한 기간이 7년 정도에 이르렀으므로 식품 제조·가공업을 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지만 대법원은 이런 경우에도 즉석 판매제조·가공업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식품위생법령이 식품 제조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이를 달리 취급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행법은 기성 상품을 판매 장소에서 소비자에게 덜어서 판매하는 경우도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때 인정 범위에서 식초 등을 제외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가 식초를 본인이 직접 제조해 판매했으므로 이 규정에 따라 제외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2심)은 식초가 즉석판매 제조·가공업 대상이 아니라고 단정한 나머지 A씨가 주거지에서 식초를 직접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했는지에 관해 아무런 심리를 하지 않아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A씨에 대한 4번째 재판이 춘천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씨는 식품위생법 위반 해당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고, 감형이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