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반중 성향으로 분류되는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서 국내 산업계, 특히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미국과 중국, 그리고 중국과 대만의 갈등 심화를 변수로 꼽는 가운데 당장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앞서 라이칭더 당선인은 대만 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반도체 산업에 대해 정책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줄곧 강조해왔다. 특히 대만이 보유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의 해외 생산시설 투자에 긍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라이칭더 후보의 당선으로 TSMC가 최근 힘을 싣고 있는 해외 사업확장 및 투자확대 기조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TSMC는 독일을 비롯해 일본, 미국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다. 특히 일본에선 구마모토에 1공장 구축 작업을 최근 마쳤고 2공장 건설 계획도 이미 확정했다. 3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TSMC의 작년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7.9%를 기록해 삼성전자(12.4%)와의 격차를 여전히 크게 벌린 채 독주하고 있다.
대만 신주시에 위치한 TSMC 본사. [AP] |
친미 성향인 대만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TSMC가 글로벌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특히 미국 반도체 산업과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수록 일각에선 국내 반도체 업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반도체와 TSMC와의 밀월관계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입장에선 결국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증명해 미국과 TSMC의 강력한 연대를 뚫어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가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민진당 재집권으로 중국이 대만 압박 수위를 높이거나 산업을 봉쇄할 경우 국내 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시각도 존재한다. TSMC가 생산한 반도체 공급이 막히면 글로벌 기업들은 그 대안으로 한국 반도체를 선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선거 결과가 정권교체가 아닌 민진당 정부의 연속이란 점에서 과도한 기대나 우려를 가질 만큼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 기업들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 기업의 비중이 작아 국내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정권이 바뀐 것도 아니고 친미 성향의 정권이 그대로 이어지는 만큼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도 크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재수 한국경제인협회 아태협력팀장도 “한국과 대만, 일본, 미국으로 구성된 ‘칩4 동맹’은 더욱 긴밀해질 것이란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한국과 대만의 주력 분야가 서로 다른 만큼 기존 상황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진당이 제1당을 내주고 라이칭더의 득표율이 50%를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라이칭더 정권이 반중독립 노선을 적극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김양팽 연구원은 “대만 국회가 여소야대 국면이 됐기 때문에 단순히 총통 한 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치가 그렇게 힘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이번 선거결과가 당장 우리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