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A’가 목표였던 범생이가 록을 만나 벌어진 일?!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뮤지컬 ‘스쿨 오브 락’ 내한공연 [에스앤코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권력자는 어디에나 있어. 지구온난화, 주차 딱지? 틱톡, 블랙핑크도 다 권력자의 짓이야!”

평균 나이 12.5세. 올A 성적표가 인생 목표였고, “‘영향을 준 뮤지션’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BTS”라 말하는 ‘록알못(록을 알지 못하는)’ 모범생들이 록에 입문한다. 누구 못지 않게 ‘록 스피릿’ 탑재했다. 자신의 꿈을 강요하는 부모, 말문은 막고 보는 어른들…. 그저 존중받고 싶었을 뿐인데, 저마다의 사정에 ‘세상과 멀어진’ 아이들에게 ‘록의 저항정신’은 ‘영혼의 단짝’이었다.

‘못생기고 뚱뚱한 첼로’ 대신 베이스를 퉁기고, 자신의 키보다 큰 일렉트로닉 기타를 메고 무대 위를 날렵하게 미끄러진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던 고운 손은 키보드 위로 옮겨 현란하게 움직이고, ‘소음 유발자’였던 심벌즈 주자는 박력있게 드럼을 친다. 그리고 록의 시작을 알린다.

“세상에서 제일 열받는게 뭐지?”, “부모님의 틱톡 친추! 학원 뺑뺑이! 권력자에 맞서라(Stick It to the Man).”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뮤지컬 ‘스쿨 오브 락’ 내한공연 [에스앤코 제공]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이다. 음악이 시작되면 심장 박동수도 함께 뛴다. 내 안에 잠든 ‘나만의 록’이 깨어나는 시간. 할리우드 배우 잭 블랙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2004년)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 ‘스쿨 오브 락’(3월 24일까지·예술의전당)이 5년 만에 돌아왔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를 만든 살아있는 ‘뮤지컬 전설’ 앤드루 로이드 웨버(76)가 제작부터 작곡까지 도맡은 수작이다. ‘학교’와 ‘록’이 만난 작품에서 ‘뮤지컬의 가능성’을 발견한 웨버는 무려 7년의 협상 끝에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 픽처스로부터 뮤지컬 각색권을 따냈다.

웨버의 대표작과는 완전히 다르면서도, 거장의 솜씨가 곳곳에 녹아든 뮤지컬은 음악, 연기, 연출, 무대 구성 등 4박자가 완벽하게 버무려졌다.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의 크리스토퍼 키 협력 연출, 미카엘라 포웰 협력안무, 존 릭비 음악 슈퍼바이저(왼쪽부터) [에스앤코 제공]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존 릭비 음악 슈퍼바이저는 “웨버의 초기 작품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나 ‘에비타’를 보면 그는 열정적인 록 음악가였다. 그에겐 록의 뿌리가 있다. 록 LP(레코드 판) 컬렉션도 어마어마하다”며 “‘스쿨 오브 락’은 웨버의 록 계보를 찾아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특히나 음악에 공을 들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곡을 활용했고, 웨버가 작곡한 14곡을 추가했다. 한 번만 들어도 귀를 사로잡은 대중적인 멜로디가 장르를 변주하며 무대 위로 흐른다.

록 음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웨버의 ‘자아 분열’ 유머도 등장한다. 그가 작곡한, 뮤지컬 ‘캣츠’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 ‘메모리’를 밴드 매니저 써머가 부르자, “누가 작곡했는지 모르지만 작곡 접으라고 해”라는 대사는 ‘뮤지컬 거장’만이 만들 수 있는 ‘웃음 포인트’다.

신분을 속이고 명문 학교에 대리교사로 취업한, 영화에선 잭 블랙이 연기한 기타리스트 듀이 역엔 ‘브로드웨이 스타’ 코너 글룰리(30)가 열연했다. 또 17명의 ‘영캐스트’(아역)들도 등장해 악기를 직접 연주한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 준결선 진출자 출신으로 여섯 살 때부터 기타를 시작한 해리 처칠(메이슨, 잭 역)은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5~6세 무렵 음악을 시작했다. 이 뛰어난 재능의 영캐스트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에서 명문 학교의 대리 교사 듀이 핀 역할을 맡은 코너 글룰리 [에스앤코 제공]

협력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키는 “‘스쿨 오브 락’에 출연하는 아역들은 ‘영캐스트’라고 부르지 아이들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영캐스트는 어른들만큼 프로페셔널하고, 한 사람이 2~3개 역할을 할 만큼 훌륭하다. 악기 실력, 보컬 능력, 코미디 연기 능력 등 모든 것이 가능한 배우들을 뽑았다”고 말했다.

밴드의 넘버를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는 영캐스트의 연습 과정도 체계적이다. 특히 제작진은 ‘록 위크’를 따로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악기 연습과 테크닉을 익히는 과정을 갖도록 했다. 협력 안무를 맡은 미카엘라 포웰은 “영캐스트에게 악기는 제2의 팔”이라며 “처음엔 이 멋진 아이들을 멋져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었다”며 지난 연습 과정을 돌아봤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대 위 아이들이 어색함 없이 악기와 한 몸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악기를 시각화 해 보여줄 수 있도록 안무에 록 제스처와 무대 매너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월드투어를 다니는 17명의 아이들은 ‘영국 가이드 라인’에 맞춰 긴 여정을 소화한다. 부모가 동행하고, 하루 중 ‘3시간 튜터링(공부)’, ‘뮤지컬 연습’, ‘드레스 리허설, 공연’ 등의 일정이 정해져 있다.

다재다능한 아이들을 이끄는 ‘괴짜’ 선생 듀이는 무대를 쥐락펴락하며 전체 흐름을 끌고 가는 중요한 인물이다. 영화 팬들은 잭 블랙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코너 글룰리는 원작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뮤지컬 ‘스쿨 오브 락’ 내한공연 [에스앤코 제공]

크리스토퍼 키 연출은 “코너 글룰리가 연기하는 듀이는 틀을 깨는 인물”이라며 “우리는 항상 잭 블랙과 같은 사람을 찾아왔지만, 브로드웨이에서 그가 얼터네이터로 듀이 역을 했을 때, 짐 캐리와 잭 블랙을 합친 연기로 엄청난 화제와 소문을 뿌렸다. 이토록 능력있고, 열정적이며 집중력과 추진력을 가진 배우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코너 글룰리는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보며 자랐고, 잭 블랙을 보며 이 길을 걷게 됐다”며 “하지만 무작정 잭 블랙을 따라하고 싶지 않았고,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잭 블랙을 보며 수년간 연구했다. 그에 대한 존경심과 어우러져 잭 블랙을 닮은 나만의 듀이가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듀이처럼 ‘미친 텐션’의 글룰리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상당하다. 색다른 영캐스트와의 조합에 매일 밤 새로운 듀이와 ‘스쿨 오브 락’을 만나는 것이 이 무대의 묘미. 음악으로 자신을 찾아가며 기적 같은 연주를 들려주는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짜릿한 경탄이 찾아온다. 글룰리는 “순수한 기쁨과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영캐스트가 극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했다.

무대를 즐기는 방법은 하나다. 글루리가 능숙한 한국어로 던진 한 마디. “일어나 소리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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