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지난해 은행권에만 20조원이 넘는 퇴직연금 자산이 몰리며, 은행들이 전체 퇴직연금 시장의 절반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2022년 곤두박질쳤던 증시가 회복세를 띄며, 은행권 퇴직연금 수익률 또한 전년도에 비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은행권에서도 퇴직연금 수익률 및 서비스를 더 강화하며, 본격적인 고객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 앞 안내문.[연합] |
21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국내 11개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196조481억원으로 전년말(170조8255억원)과 비교해 27조2226억원(15.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개인퇴직연금계좌(IRP) 잔액이 49조3946억원으로 전년(38조2837억원) 대비 29%가량 크게 증가했다.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은 각각 9.6%, 16% 늘어났다. 5대 시중은행은 은행권 적립액의 78%인 155조원의 적립금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추세는 IRP와 DC형에 적용된 디폴트옵션의 영향으로 보인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미리 정해둔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그간 금융권은 수익률 부진 원인 중 하나로 고객의 미진한 운용관리를 지적해왔는데, 이를 극복하려 마련된 수단 중 하나다. 디폴트옵션은 1년의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 7월 본격 시행됐다.
은행권은 지난해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액 5조1095억원 중 86%에 해당하는 4조3998억원의 자금을 흡수했다. 이에 따라 총 378조원에 달하는 전체 퇴직연금 시장에서의 은행권 점유율은 52%로 과반을 넘어섰다. 그 뒤로는 보험업권(93조2479억원, 25%), 금융투자업권(86조7397억원, 23%) 등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 한 거리에 주요 시중은행의 ATM기기가 설치돼 있다.[연합] |
은행권의 퇴직연금 수익률도 크게 개선됐다. 원리금 보장형의 경우 ▷DB형 4.1% ▷DC형 3.7% ▷개인IRP 3.5% 등으로 은행권 정기예금과 유사한 수준을 나타냈다. 원리금 비보장형의 경우 ▷개인IRP 13.6% ▷DC형 13.7% ▷DB형 9.9% 등으로 1년 새 급등했다. 지난해 은행권의 원리금 비보장형 수익률은 ▷개인IRP –15.98% ▷DC형 -15.75% ▷DB형 –6.92% 등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이같은 회복세는 2022년 금리 인상과 함께 곤두박질쳤던 증시가 회복된 영향으로 보인다.
주요 5대 시중은행 중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의 수익률 1위는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이 차지했다. 하나은행은 DC형 수익률 16.15%를 기록하며, 가장 높은 수익률을 냈다. 이 외에는 ▷국민은행 13.71% ▷신한은행 13.48% ▷우리은행 13.25% ▷농협은행 12.85% 등 순이었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 앞 안내문.[연합] |
개인 IRP에서도 하나은행이 13.93%의 수익률을 내며 선전했다. 그 뒤로는 ▷농협은행 13.34% ▷국민은행 13.32% ▷신한은행 12.56% ▷우리은행 12.4% 등이었다. DB형 수익률은 국민은행이 10.49%로 유일하게 10%대를 기록했다. 나머지는 ▷신한은행 8.87% ▷농협은행 8.82% ▷우리은행 8.73% ▷하나은행 6.99% 등으로 집계됐다.
전 은행권에서는 지방은행의 수익률이 눈에 띄었다. BNK부산은행의 DC형 수익률은 16.46%로 하나은행(16.15%)과 비교해 0.3%포인트 앞섰다. BNK경남은행은 DB형 수익률 12.44%를 달성해 전 은행권에서 가장 높았다. 개인IRP에서는 광주은행이 17.66%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냈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연합] |
은행들은 미래 성장이 큰 퇴직연금 시장에 점차 공을 들이고 있다.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한 자금인 만큼, 은행권에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와 수익창출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이자이익 창출을 위해 자산관리 분야를 확대하고자 하는 최근 은행의 경영 방향성에도 부합한다.
다만 아직 은행권 퇴직연금 상품은 원금 보장형 상품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말 기준 은행권 전체 퇴직연금 적립액(198조464억원) 중 원금 비보장형 적립액(19조5906억원) 비중은 9.89%에 불과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고객이 은행권으로 몰린 영향이다. 이에 은행권은 수익률 관리 외에도 퇴직연금 고객 전문 상담채널 등 각종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익률이 꾸준히 공시되고 있지만, 원금 보장형을 선택하는 대다수 고객의 경우 편리함 등을 우선으로 생각해, 기존 주거래 은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익률 개선에도 공을 들이겠지만, 그 외 수수료 절감이나 이용 편의성 향상 등 부분에 대한 투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