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전날 대통령실의 사퇴를 요구에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김진·신현주 기자] 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을 80일 남기고 정면 충돌했다. ‘수직 관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정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윤석열 대통령과 당권을 거머쥐며 단숨에 유력 대권주자 자리를 꿰찬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이에 ‘힘 겨루기’ 양상이다.
여권의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간 균열은 서울 마포을 출마를 선언한 김경율 비대위원과 관련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대통령실이 급기야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이 이를 공개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정권 심판’ 프레임에 맞서야 할 집권진영에선 이례적인 갈등이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한 위원장의 입장 변화가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22일 국회 출근길에서 대통령실의 당무개입을 지적하는 취재진 질문에 “평가는 제가 하지 않겠다”며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실제 있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인 셈이다.
이어 그는 ‘총선 때까지 비대위원장 임기를 완주할 것인가’란 질문에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실이 시사한 비대위원장 사퇴론을 일축한 것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비대위원장은 당대표와 달리 자진사퇴를 하지 않는 한 강제 교체가 어렵다.
한 위원장의 발언을 놓고 여권에서는 “약속대련이 아닌 것 같다”는 당혹스러운 반응이 쏟아졌다. 앞서 여권에서는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의 갈등이 당정 간 사전 공감대 속에 이뤄졌을 가능성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도 전날 페이스북에서 “서로 다른 팀인 척 해서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당무개입 논란으로도 번질 수 있다”며 “약속대련의 수위를 한참 넘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비대위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배경에는 ‘김건희 리스크’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경율 비대위원을 시작으로 안철수·하태경 의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등 수도권 출마자들이 김 여사의 명품백 의혹 등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고, 한 위원장도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전향적 입장을 내놨다. 이는 명품백 의혹을 ‘몰카 공작’이라 규정한 기존 지도부 입장과 거리가 있다. 실제 이달 초 신년인사회까지만 해도 한 위원장을 호평했던 대통령실 내부 분위기는 2주 사이 급속도로 냉랭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대통령실이 사천(私薦) 우려를 제기한 김 위원은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교해 논란을 부른 인물이다.
당 안팎에서는 갈등 수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표면상 갈등이지만 빨리 수습하시라. 총선이 80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4월까지 대통령실과 싸우면 우리 다 진다”며 “지금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한 위원장은 정치 생명을 위해 반드시 총선에서 이겨야 하고, 이를 위해선 김건희 리스크를 극복해야만 한다”며 “권력은 둘로 나눌 수 없다. 총선 결과와 관계 없이 조기 레임덕 사태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