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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2월이 절반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월간 기준 서학개미(서구권 주식 개인 소액투자자)들의 미국 증시에 대한 순매수액이 22개월래(來)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급등세를 통해 미국 증시 주요 지수들의 최고가 기록을 연일 경신하는 데 ‘1등 공신’으로 활약 중인 인공지능(AI) 관련주에 대한 서학개미의 투심이 쏠린 가운데, 서학개미들의 최선호주인 테슬라에 대한 ‘저가매수’ 심리까지 더해진 결과다.
16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이달 국내 투자자의 미국 증시에 대한 순매수액은 9억5081만달러(약 1조267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간 미국 증시 순매수액으론 18억6023만달러(약 2조4797억원)를 기록했던 지난 2022년 5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은 액수다.
종목별로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보관액 1위(107억8716만달러, 약 14조3793억원) 종목 테슬라가 3억554만달러(약 4073억원)로 2월 순매수액 1위 종목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어 보관액 2위(68억605만달러, 약 9조725억원) 엔비디아가 2억2957만달러(약 3060억원)로 순매수액 2위였다. 두 종목의 뒤를 마이크로소프트(MS, 1억3812만달러, 약 1841억원), 알파벳(9355만달러, 약 1247억원) 순서로 따랐다. MS와 알파벳은 보관액 순위에선 각각 4위(33억7621만달러, 약 4조5005억원)와 6위(21억9495만달러, 약 2조9259억원)다.
2월 들어선 모처럼 단일종목 중심의 순매수 장세가 펼쳐졌다. 상위 10개 종목 중 절반인 5개 종목이 상장지수펀드(ETF)가 아니라 단일종목이 차지하면서다. 단일 종목이 종목별 순매수액 ‘톱(TOP) 10’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 만이다.
서학개미들의 투자 행렬을 이끈 것은 작년부터 시작해 연초까지 미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AI 투자붐이다. 지난해 초 생성형 AI 챗봇 ‘챗(Chat)GPT’ 열풍으로 시작된 AI 투자붐은 올 들어선 온디바이스(On-device) AI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MS는 애플을 제치고 세계 시총 1위 기업으로 뛰어올랐고, 글로벌 1위 AI 반도체사 엔비디아 시총도 알파벳, 아마존 등을 제치고 3위까지 상승했다. 특히, MS와 엔비디아의 경우 기존 미 증시 주도 빅테크주를 묶은 ‘매그니피센트 세븐(Magnificent Seven, M7)’의 뒤를 이은 ‘AI5(MS·엔디비아·AMD·브로드컴·TSMC)’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런 분위기를 토대로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3대 지수’로 꼽히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5일(미 현지시간)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5029.73포인트) 기록을 세웠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지난 12일 종가 기준 3만8797.38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나스닥지수는 1만6000선에 바짝 다가서며 지난 2021년 11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1만6057.44포인트)에 근접했다.
일각에서 단기간 급등한 탓에 조정세가 올 수 있단 지적이 있지만, 월가의 주류 의견은 추가 상승을 가리키고 있는 분위기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취합한 총 51명의 월가 애널리스트 중 84.3%(43명)가 ‘매수(Buy)’ 의견을 냈고, 6명이 ‘비중확대(Overweight)’, 2명이 ‘보류(Hold)’였다. ‘비중축소(Underweight)’와 ‘매도(Sell)’ 의견은 한 명도 없었다. 목표주가 평균치도 469.94달러로 현재 주가 대비 상승 여력이 15.59%에 달했다.
엔비디아에 대해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연이어 목표주가 상향 조정에 나서는 분위기다. 앞서 12일(현지시간) 멜리우스리서치와 UBS는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각각 750달러에서 920달러, 580달러에서 85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13일(현지시간)엔 미즈호가 625달러에서 825달러로 목표주가를 올려잡았고, 14일(현지시간)엔 서스퀴하나가 625달러에서 850달러로 주가 목표치를 상향했다.
한동안 주가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큰 폭으로 하락했던 테슬라에 ‘저가매수세’가 몰린 것도 미국 증시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투자액을 크게 늘리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19.31%나 하락했다. 지난해 7월 19일 기록했던 최고가(293.34달러) 대비 올해 최저가(2월 5일, 181.06달러)까지 하락률은 38.27%에 달한다.
테슬라 주가가 주춤했던 이유로는 전기차 시장 둔화 속 판매 대수 증가를 위한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지며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등 성장세가 둔화되는 모습이 확연하게 나타났는 점이 꼽힌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언행으로 인한 각종 리스크는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미 투자 전문 매체에선 미국 증시를 주도해 온 M7에서 테슬라가 가장 먼저 퇴출될 것이라 꼽기도 했다.
하지만, 서학개미들은 테슬라 주가가 현재 ‘바닥권’인 만큼 상승에 베팅하며 이른바 ‘줍줍’에 나선 모양새다. 15일(미 현지시간) 미 뉴욕증시에서 테슬라 주가는 전날보다 6.22% 급등한 200.45달러로 ‘이백슬라’ 고지 재탈환에 성공했다.
이지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의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모멘텀이 가시화되지 않아 주가 하방 압력은 지속될 것”이라면서 “다만 사이버트럭 등 신사업에 대한 모멘텀이 회복될 가능성을 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