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를 하던 중 웃고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은 재임 기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자신을 지탱해줄 지지 기반이자 우군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 불발과 내분 등으로 비판을 받은 끝에 지난 16일 경질됐다. 15일 협회 국가대표전략강화위원회 회의에서 ‘선수단 내 불화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이 더 들썩였고, 정 회장도 결국 경질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한 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달 가량 전 클린스만 전 감독이 자신을 사실상 내친 정 회장과의 돈독한 관계를 언급한 대목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아시안컵이 한창이던 지난달 21일 슈피겔이 공개한 심층 인터뷰 기사에는 클린스만 전 감독이 정 회장을 어떻게 봤는지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지난해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등지에서 수차례 클린스만 전 감독과 만난 마르크 후여 기자는 그가 한국 대표 기업 중 한 곳인 현대가(家)의 정 회장에 대해 열광적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현대의 영향력을 전하며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엄청난 일”이라고 했다.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곧장 정 회장에게 문자 메시지로 연락해 직접 대면한다고 슈피겔에 전했다.
서울 용산역 인근 호텔에 머물었던 것으로 알려진 클린스만 전 감독은 정 회자의 사무실이 용산역 근처에 있다며 자기 숙소에서 ’5분 거리’라고 밝혔다. 실제 정 회장의 HDC현대산업개발 본사가 용산역에 위치한다.
십수 년간 클린스만 전 감독과 수차례 심층 인터뷰를 한 후여 기자는 독일을 지휘할 때도 그는 대표팀 일정이 끝나면 캘리포니아 자택으로 돌아가 비판이 있었다고 썼다.
당시 클린스만 전 감독의 우군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였다고 한다. 슈피겔은 “어려운 시기에 곁을 지켜줄 동맹이 필요하다”며 클린스만 전 감독에게 정 회장이 이런 존재라고 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고민하고 있다. [연합] |
클린스만 전 감독은 슈피겔에 “내 노트북이 내 사무실”이라며 재택근무 논란을 둘러싼 소신도 분명히 했다.
스스로를 경계를 넘나드는 ‘새’에 빗댄 클린스만 전 감독은 한국에 매인 채 감독직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슈피겔은 “클린스만은 한국 최고의 선수들도 한국이 아닌 유럽에서 뛰는데, 한국이든 어디든 특정한 곳에 머물며 감독으로 일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설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자신이 며칠간 보이지 않으면 한국 언론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언론으로부터 압력이 커지면서 축구협회 측에서 연락이 와 “비행편이 언제냐”고 묻는다고 덧붙였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대표팀 사안관련 KFA 임원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이날 대한축구협회(KFA)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을 결정했다. [임세준 기자] |
한편 사실상 경질된 클린스만 전 감독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자신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만든 경기 기록은 “최고”라고 밝혔다고 슈피겔이 전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슈피겔과의 통화에서 “스포츠(경기) 측면에서 보면 성공적인 결과였다. 훌륭했다”며 “아시안컵은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팀에 ‘절대 포기는 없다’는 정신을 가져왔다”고 했다.
슈피겔은 이 전화 인터뷰에 대해선 이뤄진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클린스만이 서울에 갔을 때는 설날이었고, 그와 대화할 시간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화 인터뷰는 아시안컵 직후 해임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6일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오늘 임원 회의에서 어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 내용을 보고 받아 의견을 모았다”며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대표팀 감독을 교체키로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