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종용·수술 지연’ 의료공백에 입원환자 걱정 태산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의 대규모 집단사직과 병원 이탈이 계속되면서 병원 입원 환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세우고 업무개시명령 등을 내렸지만, ‘의료대란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환자 피해만 커지고 있다.

22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병원 수술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이른바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병원은 응급과 위중증 환자 위주로 수술하면서 급하지 않은 진료와 수술은 최대한 미루고 있다.

실제로 하루 200∼220건을 수술하는 삼성서울병원은 전공의의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19일에는 전체 수술의 10%, 20일에는 30%, 21일에는 40%를 연기했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 병원의 경우 수술 숫자가 반토막이 났다. 병원 관계자는 대다수 전공의가 현장을 떠난 데 따라 정상적인 수술실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라고 했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역시 수술을 30%가량 축소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불안과 불만도 커지고 있다. 뇌졸중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는 21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한 50대 입원 환자 A씨는 “기존에 오던 레지던트 선생님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오고 있다”며 “제대로 관리 받고 있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수술이 급하지 않은 경증 입원환자에 대해선 퇴원 또는 전원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대병원으로 전원왔다는 한 환자 보호자 B씨는 “광주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왔는데, 다시 광주 병원으로 내려가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전공의 사직 때문에 이게 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버지 간암 수술 이후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는 입원 환자 보호자 C씨는 “아버지가 암수술 이후 다른 합병증 때문에 계속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병실에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2차 병원으로 전원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환자 목숨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자기들 밥그릇 지키겠다고 파업을 계속하는게 맞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빅5 병원 곳곳에는 ‘의료진 부족으로 검사가 지연되고 있다’,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글귀가 적힌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지방 병원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했다. 실제로 강원도 원주의 한 병원에서는 최근 입원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료파업으로 인해 응급상황 발생 시 상급병원 전원이 불가할 수 있어 사망, 건강 악화 등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대병원 호흡기내과 병동 앞에서는 의사가 없어서 ‘수술 동의서’를 받지 못하는 긴급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고, 응급병동 내 장기 입원 환자와 경증 환자들은 요양병원과 2차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대구 북구의 경북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이날 환자가 20시간이 넘도록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도 목격됐다. 부산대병원에는 20일 짐을 실은 캐리어를 끌거나 양손에 짐가방을 든 채 병원을 나서는 환자들이 이어지며 ‘퇴원 릴레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환자가 헛걸음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지역별로 전공의의 사직서를 낸 병원 리스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생기기도 했다.

환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의료 대란’이 장기화하는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한 간부는 “이 사안이 1년 이상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환자 단체 등은 이 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등 6개 중증질환 환자단체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형국”이라며 “중증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강대강으로 대치하는 정부와 의사단체는 즉각 이 사태를 멈추고 대화와 해결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전공의가 아닌 병원 종사자들도 목소리를 냈다. 상대적으로 전공의 이탈이 많은 병원인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은 “현재 수술 연기와 진료 지연이 가장 큰 문제로 파악된다”며 “미리 일정을 당기는 등 준비한 진료과가 있어 업무 상 혼란은 해결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다들 (전공의) 업무공백의 짐을 조금씩 나눠지고 있다”며 “당장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의료대란 수준은 아니지만, 당연히 장기화하면 언론이 우려하는 대란이 현실이 될 수 있는만큼 조속히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용재·안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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