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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 |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의대 증원은 의료 개혁이 아니다"라며 필수의료를 살리는 구체적 방안을 먼저 마련하라고 촉구해 눈길을 끌고 있다.
2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라고 밝힌 A씨의 글이 올라왔다. 흉부외과는 환자 생명을 다루지만 그만큼 업무가 힘들고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대표적인 기피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의대 정원 문제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요즘 '왜 하필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흉부외과를 선택했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흉부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분야의 위기는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무관심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아무도 관심 없는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이 국가가 책무이며 그것이 행정력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름 저희는 수술명 분류조차 명확하지 않은 소아 수술 분류도 함께 해보자고 외쳤고, 수술 재료가 국내에 안 들어오니 수입이 가능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 국내 생산 가능한 재료들은 나라에서 도와 생산 가능하게 해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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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 [연합] |
이런 와중에 한덕수 총리는 지난 18일 필수 의료·지역 의료 문제를 거론하면서 의대 증원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고, 이에 A씨는 "의료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시스템 운영 주체가 사과 한마디 없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경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의 위기, 밤샘근무, 장시간 수술 개선이 어떤 연관이 있느냐"며 "뚱딴지처럼 2000명씩 5년간의 의대 증원을 (의사들의) 과로사를 막는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의미 없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대 증원은 의료 개혁이 아니다. 흉부외과의 미래를 발전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의료붕괴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필수의료의 돌연사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며 수가 인상, 업무 후 휴게시간 법적 보장, 일정 시설 이상의 당직실 의무 설치, 당직 수가 기준 마련, 각종 인증평가 및 상급병원 조건에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 수와 장비시설 요건 명시 등을 해법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구체적이고 쉬운 해결책이 있는데 하필 과로사 위기의 의사들에게 15년이 넘게 걸리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왜 직접적인 방법이 있는데 낙수 효과로 설명되는 정책을 왜 우리에게 이해시키려 하는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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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
A씨는 "1980년대 의사 정원은 더 적었는데 흉부외과 지원자는 현재의 3배였다. 낙수 효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15년 후 효과가 나타날 의대 증원 논리에 오늘날 필수의료 붕괴가 유린된 것이, 70대 문맹율을 낮추기 위해 초등학교 한글교육을 강화한다는 논리가 세상에 통하는 게 매우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필수의료 위기라고 진단했다면 관련된 수가를 현실화하고 진흥책을 만들면 된다. 수가가 오른다고 필수의료 의사들의 월급이 오르는 게 아니다. 다만 필수의료에 재투자가 되는 것"이라며, 정부를 향해 "필수의료를 살리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 달라. 10조짜리 럭키박스로 필수의료 정책을 흔들지 말아 달라. 2000명X5년의 증원 반대를 의대 증원 반대로 호도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나라를 걱정했다면 필수의료를 걱정했다면 필수의료 대책을 먼저 세밀하게 계획하고 그 다음에 의대정원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2000명은 고정시키고 필수의료 정책은 타협하자고 한다. 하명받은 것이다. 한심하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와 함께 혼합진료(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비급여 항목을 끼워서 진료하는 것) 금지와 개원면허제 추진 등 의사들을 필수·지역의료로 유도하기 위한 '필수의료 패키지'도 내놨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선의 진료를 제한하는 정책들로 가득하다"며 반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