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만 잘못 걸려도 죽는다” 애타는 암환자들…전공의 복귀 시한 D-1

오전 7시 30분께 서울 신촌 세브란스 암병원 체혈실 앞에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안효정 기자

[헤럴드경제=안효정·박지영 기자] 정부가 병원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보낸 ‘복귀 마지노선’이 하루 앞(29일)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일부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전공의 공백으로 이미 혼란을 겪고 있는 의료 현장 분위기는 아직도 위기 상황이란 점은 자명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첨예하게 갈등을 빚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환자와 보호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28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의료진과 환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강한 대응에도 복귀에 나선 전공의들은 드물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한 간호사는 “이번엔 전공의들이 결코 쉽게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장기전을 치를 것 같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했고, 서울대병원의 한 간호사도 “병원에는 전공의들이 돌아오는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기준 주요 99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사직서 제출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80.6% 수준인 9909명, 근무 이탈자는 8939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병원 소속 전공의 대다수가 근무지로 돌아오지 않은 데다, 내달부터 수련을 시작해야 하는 인턴들마저 대부분 임용을 포기해 전공의 집단행동의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 모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암 투병을 하고 있는 A씨는 이날 진료에는 차질이 없었지만 현재와 같은 의료공백이 지속될 시 자신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라며 불안해했다.

A씨는 “항암 환자는 감기만 잘못 걸려도 합병증으로 죽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응급 상황이 발생할 지 모르는데 그때 병원에 의사가 없으면 어떡하나 싶다”며 “진료 받으면서 전공의들을 많이 마주쳤는데, 그분들이 다 떠나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폐암 치료를 위해 서울까지 왔다는 B(72) 씨는 “응급실에 전공의가 없는 게 느껴졌다”며 “암 검사를 받고 입원하기까지 반나절 넘게 걸렸다”고 했다.

림프암을 앓고 있는 가족의 퇴원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는 60대 김모 씨는 “솔직히 전공의들이 아주 못마땅하다. 의대 정원 늘린다는 정책이 맘에 안 든다고 어떻게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잡을 수 있느냐”라며 “다행히 내 가족은 이번 (의료공백) 사태에 직접적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진료나 수술 일정 밀린 가족들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아주 답답해진다”고 토로했다.

암 검진을 받기 위해 이날 채혈실을 찾았다는 이모 씨도 “의대 말고 다른 과나 대학에서 정원 늘린다고 이렇게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냐”며 “그런 곳은 세상천지 의대밖에 없다.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공의 복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암병동을 찾은 백모(56) 씨는 “몇 시간씩 대기하고 끙끙 앓는 환자들을 전공의들이 완전히 외면하고 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정부와 그만 부딪히고 하루빨리 환자들 곁으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전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앞에서 가족 면회를 기다리던 C씨도 “형님이 당뇨를 앓고 계신데 갑자기 어제 밤부터 증세가 나빠져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신촌 세브란스로 병원을 옮기게 됐다”며 “이런 응급 환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전공의들이 복귀해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편을 줄여줬음 한다”라고 했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을 ‘국민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위협’이라고 규정하며 미복귀자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오는 29일까지 병원 복귀시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29일을 복귀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적 조치”라며 “의료 개혁은 협상이나 타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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