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라면 먹고싶다”던 나발니…장례식에 수천명 운집, 터미네이터 음악도 흘러

[로이터]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러시아의 대표적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옥중에서 사망한 지 2주 만인 1일(현지시간) 오후 그의 장례식이 모스크바의 한 교회에서 치러졌다. 이날 장례식에는 지지자 수천 명이 모였다.

나발니의 장례식은 이날 그가 생전 살았던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엄수됐다.

그의 관은 예정 시간인 오후 2시께 검은색 영구차에 실려 교회 입구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나발니! 나발니!”를 연호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교회 주변엔 나발니의 동료들과 지지자들 수천 명이 모였다.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추모객들은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며 장례식을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다가 좌절된 보리스 나데즈딘과 예카테리나 둔초바 등 야권 인사와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의 대사들도 현장에 참석했다.

나발니는 창백하지만 편안한 표정으로 검은 정장을 입은 채 관 속에 누웠다. 위에는 붉은색과 흰색 꽃이 덮였다. 나발니의 어머니인 류드밀라 나발나야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발나야는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제3 교도소에서 나발니가 47세 나이에 갑자기 사망한 다음 날인 17일 교도소 인근 마을로 가서 아들의 시신을 달라고 호소한 끝에 8일 만인 24일 시신을 인계 받았다. 나발니의 아버지 아나톨리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와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 다리아 등 다른 가족은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발니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율리아 나발나야는 나발니의 살해 의혹을 제기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 새로운 러시아 야권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틀 전 유럽의회에서 연설했으며 러시아 입국시 체포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나발나야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있는 당신이 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라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할게요”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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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약 20분 간 치러졌다. 이후 나발니의 관은 영구차에 실려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로 향했다.

땅에 묻히면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웨이’가 흘렀으며, 생전 그가 좋아한 영화 ‘터미네이터2’의 마지막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돌아오겠다’(I will be back)’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던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도 배경으로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나발니는 교도소 수감 중 한국의 민주화를 거론하고 한국 라면 ‘도시락’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나발니는 지난해 9월 언론계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언급했다.

그는 “만약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러시아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 나는 이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썼다고 NYT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해 온 나발니는 혹독한 환경으로 악명 높은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지난달 16일 숨졌다.

러시아 교정 당국은 나발니가 산책 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사망 하루 전날까지도 화상재판에서 농담을 던지며 웃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온전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나발니는 300일 넘게 독방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으면서도 검열을 전제로 인터넷을 통한 서신 교환을 허용하는 교도소 규정을 활용해 외부와 꾸준히 연락을 유지했다. 지난해 말 제3 교도소로 이감돼 더는 인터넷으로 서신을 교환할 수 없게 된 뒤에도 가족 등을 통해 주변과 연락을 이어왔다.

지난달에는 한국기업 팔도의 컵라면 ‘도시락’을 여유롭게 먹고 싶다며 식사 시간제한 폐지를 요구했다가 거부되기도 했다.

한편 외신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저항의 뜻을 보여주는 최대 규모 인원이 모인 것으로 추정했다.

대규모 시위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인권단체 OVD-인포는 장례식이 열린 모스크바에서 6명을 포함해 러시아 전역에서 최소 67명이 이날 체포돼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추모객들은 교회 주변이나 묘지로 향하는 길에서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 “푸틴 없는 러시아” 등 각종 구호를 외쳤지만, 대부분 경찰은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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