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7시 30분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안효정 기자 |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의과대학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로 갈등의 수위가 점차 최고조에 달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불만과 분노도 치솟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8시 기준 보건복지부의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신규 인턴을 제외한 레지던트 1∼4년차 9970명 중 8983명(90.1%)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집단사직 이후 병원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전공의들에 대해 의사 면허를 정지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6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회의 후 “전공의 7000여명에 대한 미복귀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3개월 면허정지’를 하겠다는 행정처분 사전통지서 발송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까지 전국의 수련병원으로부터 전공의 7854명에 대해 업무개시(복귀)명령을 불이행했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복지부는 현장 점검을 통해 실제로 이들이 일을 하는지 살펴 복귀 여부를 판가름하고 미복귀 전공의에게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보내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도 대다수 전공의는 행정 처분과 고발 등을 각오하면서 병원 밖에 머물고 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한 간호사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도 않았지만 돌아올 것이라는 분위기도 딱히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근무 이탈에 환자들의 분노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채혈실을 찾은 70대 환자 박모 씨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지금 상황과 아주 딱 떨어진다”며 “힘 있는 의사들 때문에 힘 없고 약한 아픈 사람들만 죽어난다”라고 말했다.
CT·MRI 촬영실에서 접수를 기다리던 A씨는 “아픈 것도 서러운 환자들한테 의사들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라며 “의사 본인이나 본인 가족들이 아파서 쩔쩔맨다고 해도 이렇게 이기적으로 나올 수 있겠느냐”고 불평했다.
간암조기진단클리닉 입구에서 서성이며 병원 밖을 바라보던 B씨도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에 대해 비판했다. B씨는 “정부가 의사들을 달래도 보고, 강하게 꾸짖기도 하는 것 같은데 의사들은 왜 꿈쩍도 않고 이렇게까지 환자들을 괴롭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의사들이 외치는 ‘더 나은 미래’가 지금과 같은 의료 공백 상황을 지속시키면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간호사들의 피로도 누적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PA 간호사 등 간호사가 의사의 일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한 간호사는 “너무 힘들다. 힘들어서 내가 ‘뭘 하고 있다’는 인지도 잘 안 되는 상태”라고 했다. 같은 병원의 또다른 간호사도 “전공의 역할을 간호사들이 일부 맡을 수밖에 없다. 병원에 남은 사람들이라도 일 해야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토로했다.
전날 서울대병원에서 자궁 관련 수술을 받은 C(28) 씨도 “원래 내 수술에 오기로 했던 전공의가 보이지 않아서 수술 일정이 미뤄질까봐 덜컥 겁이 나고 무서웠다”며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간호사들이 전공의 일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많은 일을 떠맡아서인지 간호사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