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터진다.” MZ세대가 유행처럼 쓰는 말이다. ‘도파민 중독’ 시대에 도파민을 쫓는 현상은 스마트폰이나 숏폼(짧은 영상)에 그치지 않는다. 모두의 일상인 ‘음식’에서도 나타난다. 설탕 중독, 알코올 중독, 음식 중독이 대표적이다.
도파민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다. 쾌락·보상과 관련된 역할을 한다. 일상이 도파민에 지배당하면 주의력 저하에 뇌 건강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애나 렘키 의사는 뉴욕타임스가 베스트셀러(2021년)로 선정한 저서 ‘도파민네이션’에서 “자극적 쾌락을 반복적으로 추구하면 반드시 고통이 따라온다”고 경고했다. 그는 “쾌락과 고통은 뇌의 한 영역에서 처리되는데, 쾌락에 반복 노출되면 뇌가 수평을 맞추려 고통 물질을 분비한다”고 말했다. 자극을 느낀 뒤 찾아오는 불안과 공허감, 우울감이 이런 뇌 시스템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신재현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단 음식에 중독되면 도파민이 빠르게 증가해 즉각적인 만족감을 얻지만, 그만큼 초조함과 불쾌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특히 이런 과정을 거치면 “즉각적으로 위안을 얻는 자극적인 음식을 다시 탐닉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모르는 사이 악순환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독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불안정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신재현 원장은 “감정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더 즉각적인 충족을 바라게 된다”고 진단했다. 실제 “병원에 방문한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들을 보면 폭식이나 과자·초콜릿 등 단 음식을 과식하면서 순간적인 위안을 얻으려는 경우가 많다”고 사례를 들었다.
국내에서 뇌과학자로 유명한 장동선 박사도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현대인의 식습관 균형잡기’ 동영상을 통해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서 음식에 중독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슬픈 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당이 올라가면서 일시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린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데, 이런 습관이 반복되면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음식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해 먹기도 한다. 헛헛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려는 심리다. 최근 종영한 MBC 예능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 알콜 지옥’에서 한 출연자는 “퇴근 후 혼자 남겨진 방에서 공허함이 느껴질 때마다 술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음식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원인이다. 전문가들도 중독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접근성이라고 꼽는다. 실제 과거와 달리 현재는 손만 뻗으면 음식이 닿을 정도로 접근성이 높아졌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맛집 정보도 넘쳐난다. ‘먹방(먹는 방송)’처럼 끊임없이 음식 자극을 추구하는 트렌드도 꾸준하다.
하지만 문제는 즉각적인 즐거움에 익숙해질수록 뇌가 ‘더 빠르고 강한’ 자극을 원한다는 것이다. 설탕 중독이 위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 원장은 “설탕을 많이 먹는 습관은 도파민 수용체의 민감도를 떨어뜨린다”며 “이전보다 더 많은 설탕을 먹도록 욕구가 점점 커진다”고 설명했다.
물론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당류를 필요 이상으로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상승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된다”며 “비만, 당뇨, 관상동맥질환 등과 영양결핍의 위험이 커지고 노화도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이 아닌 다른 것으로 뇌의 ‘보상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장동선 박사에 따르면 헛헛한 마음을 음식 대신 다른 긍정적 행동으로 바꾸면 뇌 안의 새로운 보상 회로를 만들 수 있다.
신 원장은 “운동 후의 뿌듯함, 무언가를 배우면서 얻는 만족감 등 일상에서 다른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며 “술이나 설탕을 건강한 간식으로 대체하는 것도 좋다”고 제안했다. 과일·견과류 등 영양소가 높은 천연간식은 뇌와 연결된 장(腸)내 환경을 도와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그는 특히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지면 음식에만 탐닉하는 것과 자연스레 멀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육성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