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연합] |
미국의 간판주(株)이자 혁신의 상징이던 애플이 인공지능(AI)이란 거대한 급류 속에 허우적대고 있다. AI 랠리가 전 세계 증시를 견인하고 있지만 애플은 마땅한 비전을 내놓지 못해 증시에서 외면 받으면서다. 미국과 유럽에서 반독점 소송에 휘말린 데다 중국 내 ‘애국 소비’ 열풍으로 아이폰 판매량 부진이란 악재도 직면했다.
올 들어 애플 주가는 지난 4일(현지시간) 기준 12.31% 감소했다. 이 기간 나스닥지수가 6.91%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시장수익률은 19%를 밑돌고 있는 셈이다. 미국 대형기술주인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seven)’ 가운데 테슬라(-31.13%)와 함께 주가가 떨어진 유일한 기업이다. 엔비디아(80.7%), 메타(44.34%), 아마존(18.47%), 마이크로소프트(MS·11.13%), 알파벳(7.81%)은 모두 올랐다.
급기야 월가 전문가들 사이에 이제는 매그니피센트7 시대가 저물고 엔비디아, 메타, MS, 아마존을 중심으로 한 ‘팹4(Fab Four)’로 좁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팹4 기업들이 올해 1분기 스탠더드앤푸어스500의 상승분 중 절반을 차지하면서다. 이날 기준 애플 시가총액은 2조6060억달러(약 3526조원)로 MS(3조1050억달러)에 이은 전 세계 2위다. 그러나 엔비디아 주가가 올 들어 급등하며 시총 2조1470억달러(약 2094조원)로 불어나면서 애플을 맹추격하고 있다.
서학개미들의 ‘애플 외면’도 지난해부터 굳어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4일 기준, 올 들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1~3위는 테슬라(8억7376만7208달러), 엔비디아(8억5201만2843달러), 마이크로소프트(5억2086만262달러)다. 애플은 5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6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애플은 코로나19 유행으로 해외 주식투자 열풍이 불었던 2020년과 2021년 당시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 2위였다. 당시 부동의 1위였던 테슬라에 이어 2020년(18억9956만6892달러), 2021년(7억7165만8900달러) 규모였다. 아직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해외 주식 전체 3위(42억7858만6036달러·4월3일 기준)다.
애플이 소외된 결정적 이유는 AI 경쟁에서 밀려나면서다. 애플은 2011년 음성인식 AI 서비스 ‘시리’로 당시 AI 시장을 선도했다. 그러나 애플은 폼팩터(기기 형태)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차기 폼팩터로 자율주행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4년부터 애플카에 100억달러(약 13조 5000억원)을 쏟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난 2월 중단했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현실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사상 최악의 실패’라는 오명을 썼다.
그사이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2022년 생성형 AI 챗봇인 ‘챗지피티(GPT)’를 출시하며 AI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더불어 중국에서는 올해 첫 6주간 아이폰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24% 하락하며 부진을 겪고 있다. 아이폰은 지난해 회사 매출액 3833억달러 가운데 약 52%를 차지하는 핵심 수입원이다.
애플도 새 먹거리에 찾기에 나섰다. 지난 3월 캐나다 스타트업 다윈AI를 인수했는데 시장에서는 애플 기기에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AI 역량 강화로 해석한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홈 로봇’을 신사업으로 택하고 AI와 로보틱스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지난 2월 “올해 생성형 AI 분야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공언한 팀 쿡 최고경영자(CEO)의 말도 애플의 저력에 대한 기대감을 남기고 있다. 오는 6월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올해 하반기 출시될 아이폰16에 탑재할 AI 기술 등 AI 구체적 전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이를 기점으로 반등의 분수령이 될 수 있지만, AI 랠리에서 낙오된 기업으로 굳어질 수 있다. 멜리우스리서치의 벤 레이츠 분석가는 “AI 기능이 애플의 새로운 ‘슈퍼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월가는 애플 목표주가에 대한 컨센서스는 200.53달러다. 향후 12개월간 16.9%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애플의 현 주가가 아마존(14.3%), MS(10.8%), 테슬라(9.9%), 알파벳(8.8%),메타(6.1%), 엔비디아(5.8%)보다 상승 여력이 더 크다.
적극적인 주주환원 측면에서 매력적인 종목으로도 꼽힌다. 지난해 애플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71.95%로 지난 2017년(36.5%)부터 상승했다. ROE 증가는 적극적인 주주환원으로 자본총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ROE 계산 시 자본 총계 2년 평균 활용한다. 애플은 2017년 1311억달러를 고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2년 평균치는 564억달러로 고점 대비 50% 이상 줄었다.
애플은 지난 6년(2017~2023년) 동안 연평균 775억달러 수준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같은 기간 평균 순이익 773억달러를 넘어선 수준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감소했지만, 배당성향도 10% 중반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