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물 건너간 상속세 완화·금투세 폐지…21대 국회, 1.6만개 법안 폐기 수순 [4·10 총선]

방산 수출을 위해 한국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높이는 게 핵심인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지난 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4·10 총선이 범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가운데 정부가 추진 중인 상속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등은 사실상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1대 국회의 법안 처리 실적 역시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5월29일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1만6000여건의 법안이 무더기로 폐기될 전망이다. 출범 당시부터 ‘일하는 국회’를 표방했지만, 정쟁에 발목을 잡히며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 오명을 썼던 20대 국회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제출된 법안은 2만5796건으로 이중 처리된 법안은 9452건에 불과하다. 법안 처리율은 36.6%다. 계류된 법안은 1만6344건으로 63.4%의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규제개혁 법안들도 다수가 처리되지 못했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제출된 223개 규제개혁 법안 가운데 98개 법안이 계류돼있다. 산업입지법, 외국인고용법 등 윤석열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었던 ‘킬러규제’ 2건도 여전히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통상 여야는 총선이 끝난 후 마지막 임시국회를 열어 주로 쟁점이 없는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며 임기를 마무리한다. 막판에 법안 처리 실적을 올리기 위한 이른바 ‘법안 땡처리’다. 20대 국회 역시 임기 종료 전 마지막 임시국회를 열어 141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21대 국회 역시 마지막 임시국회를 열어 비쟁점 민생법안 처리에 나설 전망이다. 그러나 ‘법안 땡처리’를 통해 150건 안팎의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법안 처리율은 20대 국회와 비슷한 37% 수준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36.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접수된 2만4141건의 법안 중 1만5000여건의 법안들이 자동 폐기됐다.

폐기를 앞둔 법안 중에는 민생경제와 직결된 법안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이들 법안은 22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후에도 아예 새로 발의되지 못하거나, 발의 되더라도 원구성 협상에 소요되는 기간 등을 고려하면 오는 9월 이후에나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여야 입장차가 뚜렷한 상속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등의 법안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경우 내는 세금으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가 올해 초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며 지난 2월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상속세 완화 역시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만큼, 22대 국회 들어서도 추진 동력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추진된 재정준칙 법제화 역시 폐기 수순에 접어들었다. 재정준칙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동안 야당은 재정준칙 법제화에 부정적이었던 만큼 22대 국회로 넘어가도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마트의 주말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하고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22대 국회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유통시장의 무게추가 온라인으로 넘어가며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해당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평행선을 그으며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도 해묵은 과제로 꼽히지만 국회 통과를 장담하긴 힘들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비대면 진료 법제화 관련 법안은 5건이지만 이익집단들의 반대에 부딪쳐 21대 국회에서는 처리가 어렵다는 관측이 대세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고준위 특별법) 역시 처리가 시급하지만, 법안 통과 시점을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해당 법안은 원전 가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폐물)을 처분·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담았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시설을 짓는 데만 최장 37년이 걸리고 임시 중간저장시설을 만드는데도 최소 7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6년 후인 2030년 임시저장조가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터라 최악의 경우 원전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

오는 5월30일 임기를 시작하는 22대 국회의 성적도 주목된다. 민주당이 자력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범야권이 200석에 가까운 압승을 거둔 만큼 정국 긴장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범야권이 김건희·한동훈·이종섭 특검법 발의를 예고한 만큼 22대 국회에서도 여야간 극한 대치가 이어지며 법안 처리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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