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들이 1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4·10 총선 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고위급 참모진이 사의를 표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퇴했다. 총선에 참패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국정쇄신이라는 엄중한 민심을 반영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을 얻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한 후 몸을 낮추는 모양새다.
민심이 정권 심판론에 힘을 실어준 결과지만, 개헌·탄핵 저지선은 내주지 않았다. 결집된 민심은 정권을 끌어내리는 ‘대결의 정치’가 아닌 ‘협치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 정치를 복원해 당장 먹고살기 힘든 민생을 개선하고,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할 국가 현안에 협력하라는 ‘국민 명령’이라는 것이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참패한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민심을 받들어 국정쇄신의 닻을 올렸다. 전날 한 총리, 이 실장을 포함한 용산 고위 참모진이 일괄 사의를 표명하며 대대적인 인적 개편을 예고했다. 선거를 이끈 국민의힘 지도부도 신속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사퇴했고, 장동혁 사무총장도 당직에서 물러났다.
발 빠른 국정쇄신 움직임에는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거야(巨野)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정치적 판단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인된다.
22대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구조 개혁과 세제·규제 개혁 등 입법이 뒷받침돼야 할 개혁과제들은 범여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올해 말 진행될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여소야대 형국은 큰 산이다. 민주당만 175석이지만,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으로 넓히면 192석이다. 범야권이 단일대오를 형성하면 입법과정에서 여당을 배제한 채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고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을 지정할 수 있다.
당장은 한 총리의 후임의 총리 임명동의부터 민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5월 말까지 회기가 남은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단독 과반 의석을 갖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국정기조 전환의 핵심은 인사”라며 “내각을 책임지는 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인사가 중요하고 당은 새로운 지도부를 꾸려 야당과 하루빨리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정국이 여야 극단의 대립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승자의 독배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민심의 역풍을 우려하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총선 결과를 두고 ‘자중’, ‘자제’ 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 배경이다. 100석이 넘는 표심은 의회권력을 장악한 거야의 입법독주를 주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라며 “당선 여부를 떠나 아직 끝나지 않은 21대 국회에서도, 앞으로 시작될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민심이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은 여야가 대립과 반목으로 국력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대내외 환경은 초당적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적 대응이 시급한 위기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전쟁은 전례 없이 첨예하고, 글로벌 경기 둔화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대외 변수도 즐비하다. 국내적으로는 고물가와 고금리에 신음하는 민생경제를 활성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시설투자 세제지원 확대, 법인세 부담 완화, 다중대표소송제 완화 등 입법을 뒷받침으로 위축된 기업경영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할 정책과제도 쌓여있다.
특히 국가 부채와 저출생은 당장 여야의 협치가 필요한 국가 현안이다. 단기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구조적인 과제다. 지난해 국가 채무는 1126조7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59조4000억원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50.4%로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긴 상황이다.
저출생 여파는 국내 거주 내국인 인구를 6년 만에 5000만명 밑으로 떨어뜨렸다. 통계청이 전날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를 반영한 내·외국인 인구 추계’에 따르면 내국인 인구는 2022년 5002만1000명에서 2023년 4984만7000명으로 감소했다.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은 “야당이 국회 권력을 크게 갖게 됐으니 (여당과 야당은)타협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며 “겸손한 자세로 민생 경제에 주력하며 협치가 가능한 인사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