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스 주니어 연습생 사토루·소녀 탭퍼 하나…韓 탭댄스를 정복하다 [인터뷰]

일본에서 온 소년 탭댄서 사토루 유츠(사진 오른쪽), 소녀 탭댄서 하나 엘리자 [마포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첼로 연주곡 ‘아이 오브 더 타이거’에 맞춰 열일 곱 소녀의 발이 가뿐하게 움직인다. 경쾌하게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쭉쭉 뻗는 길고 가느다란 두 팔, 앳된 얼굴 가득 머금은 찬란한 미소…. 금세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가뿐하다가도, 묵직하게 심장을 쿵쿵 울리며 바닥을 수놓는다. 다섯 살에 탭댄스를 시작한 하나 엘리자(Hana Eliza·17)는 “탭과 함께 나의 모든 인생을 함께 걸어왔다”고 했다. 3분 50여 분의 탭소리엔 소녀 탭퍼의 온 삶이 담겼다.

“처음 탭슈즈를 신었을 때가 지금도 생생해요. 탭 소리를 들었을 때 마법에 빠진 것처럼 나한텐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2.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3악장’을 편곡한 ‘베토벤 바이러스’ 선율에 총 천연색 탭소리가 실린다. 탭슈즈의 앞코, 오른쪽과 왼쪽의 옆면, 뒤꿈치까지 무대 바닥에 깔끔하게 착지. 단 하나의 소리도 놓치지 않고 쌈박하게 마무리하는 고난도 테크닉에 ‘클래스의 차이’을 실감한다. “사교댄스 할래? 탭댄스 할래?” 엄마의 권유로 여섯 살에 인생 난제를 만난 사토루 유츠(Satoru Youtsu·20)의 14년 탭 구력은 일찌감치 세계 무대를 제패(2023 IDO 세계 탭댄스 챔피언십 우승)했다.

“제게 탭댄스는 ‘춤추는 악기’예요. 탭댄스는 많은 춤 중에 유일하게 소리가 나는 춤이에요. 춤을 추는 연주라는 것이 너무나 특별하죠.”

일본에서 온 소녀 탭댄서 하나 엘리자 [마포문화재단 제공]

일본 출신의 소년·소녀 탭퍼의 등장에 한국의 ‘탭댄스’ 신이 들썩였다. 어린 나이에 10여 년의 경력을 쌓은 프로 탭퍼들. 두 사람은 올해로 6회를 맞는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에 함께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마포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있는 이 페스티벌에 외국인 탭댄서가 참가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최근 막을 내린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서울 탭댄스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하나 엘리자는 “콩쿠르 전부터 친구가 된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김밥도 먹으며 편안하게 준비했다”며 “좋은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춤출 수 있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프로들 중에서도 두 사람은 단연 어린 댄서에 속한다. 대부분의 댄서들은 나이가 20대 중반 즈음이다. 이제 스무살 전후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하나와 사토루 모두 탭댄스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이들에게 탭댄스는 우연처럼 찾아와 운명이 됐다.

일찌감치 탭슈즈를 신은 사토루는 탭댄서로의 꿈만 키웠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땐 J-팝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쟈니스 주니어에 발탁, 3년 간 연습생으로 지내며 데뷔를 준비하기도 했다. 아이돌 외모에 탁월한 몸놀림, 리듬감까지 갖췄으니 J-팝 가수 사토루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토루는 그러나 “데뷔조에선 레슨 한 번에 150명의 남자 연습생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스스로 찾아서 하지 않으면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적었고, 개인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아 나를 표현하기가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일본에서 온 소년 탭댄서 사토루 유츠 [마포문화재단 제공]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며 탭댄서 사토루는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았다. 내로라하는 세계 탭댄서들이 모이는 IDO 세계 탭댄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최고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는게 좋았다”며 “탭댄스는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성취감이 크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TV에서 양들이 나와 탭댄스를 추는 장면을 본 다섯 살 하나에게 춤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나는 “중학교 때 학교 친구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지메(일본의 교내 폭력, 집단 따돌림)를 당해 학교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며 “그 때 하루에 15시간씩 탭댄스를 췄다. 유일하게 내 마음을 위로해준 것이 탭댄스였고, 그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탭댄스가 두 사람을 사로잡은 것은 작은 가슴 안에 담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미소로 날아오르는 하나의 탭댄스엔 열 일곱 소녀의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번 콩쿠르에서도 하나는 짧은 구성 안에 자신의 탭댄스 성장기를 담았다. 정해진 안무로 탭댄스를 배웠던 초등학생 시절, 서툴지만 즉흥 탭댄스를 췄던 중학교 시절, 그 때보다 조금 성장한 현재의 모습까지 “탭댄스 라이프를 녹였다”고 했다. 특히 하나는 “나의 생각들과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 좋다”며 “기쁨, 슬픔 등의 모든 감정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탭댄스의 큰 매력”이라고 했다.

한국의 최정상 탭댄서들이 총출동하는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에선 처음으로 부트캠프를 통해 전 세계 탭댄서들이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나 엘리자와 사토루 유츠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나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페스티벌 정보를 알게 돼 봄방학 기간 동안 오게 됐다”며 “일본에 있을 땐 항상 막내였기 때문에 어른들에게 깍듯이 행동해야 해 거리감이 있었는데, 여기에선 모두가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돌아봤다.

일본에서 온 소년 탭댄서 사토루 유츠, 소녀 탭댄서 하나 엘리자 [마포문화재단 제공]

이 시간 동안 하나와 사토루는 한국, 브라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7개국 탭댄서들과 교류하며 한 뼘 더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토루는 “탭댄스는 자신의 성격이 춤에 나와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스타일을 가지게 된다”며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다양한 개성의 참가자들에게서 내겐 없는 테크닉을 만난 것이 큰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하나는 “한국어는 아직 잘 못하지만, 언어를 초월해 몸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선한 경험”이라며 “한국 탭댄서들은 자신의 맛을 집어넣어 유연하게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탭댄서들의 전성기는 보통 20~30대로 본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동안 쌓아온 노력으로 지금도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의 ‘최전성기’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지나온 날들보다 더 찬란한 내일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저의 탭댄스는 60% 밖에 완성되지 않았어요. 세계 대회의 경험을 통해 너무 일본 안에만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제 춤이 나의 만족과 나의 세계를 중심으로 한 ‘지고추’(자기중심적) 탭댄스라면, 이젠 관객과 함께 하는 춤을 추고 싶어요.” (사토루)

“현재는 스텝 하나 하나를 밟는 데에 급급해 아직은 갈 길이 멀어요. 젊은 패기로 춤을 추고 있지만, 톡 건드려도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탭댄서가 된다면 100% 하나의 춤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 마음속 이야기를 춤으로 담고 있는데, 앞으론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춤을 만드는 탭댄서가 되고 싶어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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