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압수수색 영장범위 밖 무관정보를 계속 보관해 별건 수사에 활용한 검찰에 대해 대법원이 “위법한 수사”라고 제동을 걸었다. 검찰은 “파일을 개별적으로 청취하는 데 시간이 걸려 영장을 발부받기까지 시간이 지체됐다”고 했으나 대법원은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받은 검찰 수사관 A씨에 대한 사건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수사기관이 수집한 A씨에 대한 증거의 능력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부인하며 “다시 판단하라”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한 A씨는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받았다. A씨는 2018년 5월, 원주시청 소속 공무원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
현 시장의 재선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를 지연시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실제 A씨는 직장 후배를 통해 관련 사건의 처리를 늦춰 선거일 이전에 수사가 진행되지 않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문제는 검찰이 이 사건의 핵심 증거가 된 녹음파일을 발견한 경위에서 시작됐다. 앞서 검찰은 이 사건과 별개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A씨에게 청탁을 의뢰한 공무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는데, 이를 대검찰청 디넷(디지털수사망)에 저장해뒀다. 그러다 우연히 A씨와 공무원이 통화한 녹음파일을 발견하게 됐다.
이는 휴대전화 압수 당시 발부받은 영장범위 밖의 무관정보에 해당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러한 무관정보가 우연히 발견된 경우엔 더 이상의 추가 탐색을 중단하고, 법원으로부터 별도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적법하게 수색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이를 따로 정리해 CD에 복제한 다음 수사기록에 편철하고, 청탁금지법 위반 관련 수사를 이어갔다. 약 1개월 뒤 2차 영장을 발부받긴 했으나 집행하진 않았고, 다시 2개월이 지났을 때 3차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 검찰은 이러한 추가 수사를 진행한 뒤 녹음파일 등을 증거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과 2심은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결과였다.
물론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녹음파일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상 독수독과 원칙에 따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영장 집행 경위와 사건의 특수성 등에 비췄을 때 수사기관이 의도적으로 영장주의의 취지를 회피하려고 시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3차 영장 집행 당시 A씨에게 참여권을 보장하는 등 관련 절차를 준수한 점 등에 비췄을 때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에서 사건의 쟁점은 ‘디넷 서버에 혐의 무관 정보를 계속 보관해 탐색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등 이었다. 대법원의 결론은 “없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먼저 “수사기관이 우연히 A씨의 전자정보를 발견한 뒤 1개월간 영장 없이 탐색을 이어갔다”며 “이후에도 2개월간 무관정보를 탐색하는 등 수사를 계속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유관정보와 무관정보를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볼 수 없다”며 “무관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않고 계속 보관하면서 탐색한 일련의 수사상 조치는 모두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당연히 삭제했어야 할 정보를 사후에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했다 하더라도 하자가 치유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대법원은 “무관정보를 발견하고 제2 영장을 발부받기까지 약 한 달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은 무관정보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무관정보를 기초로 한 이 사건 수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의 의의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대법원은 영장집행과정에서 무관정보 발견 시 취해야 할 수사기관의 조치, 무관정보의 삭제의무 등을 엄격하게 요구했다”며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