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철 전 기후변화대사 “2050 탄소중립은 국가 경제 생존의 문제…‘한국판 IRA’ 나와야” [인터뷰][ 2024 H.eco포럼]

유연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기후위기 대응이 인류 생존의 문제라면, 2050년 넷제로(Net Zero·탄소 중립) 달성은 우리 국가 경제의 생존의 문제입니다.”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은 최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산업 구조를 바꾸고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경제 성장으로 가는 맥락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82년 외교부로 입문해 유엔글로벌콤팩트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34년 간 공직에 몸 담은 ‘환경통’이다. 1991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제정하는 기후변화협상 참여를 시작으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설립, 녹색기후기금(GCF) 한국 유치 등에 기여했다. 2018년 6월에는 기후변화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녹색기후기금(GCF)가 입주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G타워 [헤럴드DB]

유 사무총장은 최근의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을 두고 “기후위기가 가장 심각한 때에 국제 사회의 논의는 오히려 퇴보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해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지난 1~3월에도 세계 평균 기온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10개월 째 ‘가장 더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 제한하자는 목표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같은 시기 지구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탈(脫) 화석연료’ 국제 논의는 산유국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당초 논의됐던 ‘화석연료로부터 전환’에서 ‘화석연료 배출(emission)로부터의 전환’으로 합의문 문구가 수정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유 사무총장은 “한 단어가 추가되면서 기존 논의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화석연료라는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술탄 알자베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가운데)이 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전체 회의에 앞서 박수를 치고 있다. COP28은 이날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골자로 하는 합의를 도출했다. [연합]

그러면서도 유 사무총장은 산유국들이 주장하는 ‘에너지 중립성’도 간과할 수 없다고 봤다. 에너지 체계를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되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령 산유국들이 제시하는 화석연료 배출 저감기술에는 대표적으로 탄소 포집·이용·저장(CCUS)이 있다. 유 사무총장은 “지난해부터 CCUS 기술에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CCUS를 실현하려면 수송이 반드시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는 수송에 커다란 경쟁력이 있다”고 부연했다.

기후위기 대응 방식을 두고 국제사회가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도 선진국들은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선진국들의 에너지 전환 속도는 빠르다. 더 이상 나홀로 석탄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했다가는 더 이상 수출을 할 수 없다”며 “먼저 기후위기 대응 기술을 개발하고 선점하는 국가가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유연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그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흐름 속에서 각국 정책이 규제에서 지원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화의 출발점에는 ‘1.5도 제한’ 합의를 이뤄냈던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실제 이행하려면 재원과 기술 이전, 역량 배양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 사무총장은 “파리협약의 정신은 자발성에 있다”며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보조금의 형태로 각국의 정책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태양광, CCS 등 산업을 미국 내 유치하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가 대표적인 지원 정책이다. 유럽도 질세라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각국의 최종 승인을 거쳐 이르면 연내 발효·시행된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기후위기 대응 산업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만큼 이에 역행하면 한국의 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유 사무총장은 “우리도 750조원 규모의 녹색 금융 지원책 등을 내놨지만 어떻게 지원할 건지 구체성이 떨어진다”며 “우리도 ‘한국판 IRA’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유연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아울러 유 사무총장은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는 기업이라고 봤다. 온실가스의 대부분이 기업 활동에서 배출되는 만큼 감축 역시 기업이 움직여야 해결된다는 관점이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청사진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꾸려가는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기후위기가 전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데 공동의 합의가 됐다”며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기업이 달성할 수 있도록 민간에서 정부와 기업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사무총장은 2022년 6월부터 세계 최대 기업 지속가능경영 이니셔티브인 유엔글로벌콤팩트의 한국협회에서 유엔이 설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기업이 내재화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편, 유 사무총장은 다음달 22일 서울 반포 세빛섬 가빛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제4회 ‘H.eco포럼’(헤럴드환경포럼)에서 연사로 나서 에너지 전환의 글로벌 트렌드를 전한다. 또 넷 제로(Net Zero·탄소 중립)를 위한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한 토론을 좌장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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