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뉴스가 일상이 됐다. ‘유례없는’, ‘사상 최고’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국내 과일·채소 가격이 주요 선진국의 평균을 훌쩍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 고물가 상황은 과거 대비 정말 이례적일까.
29일 헤럴드경제는 과거 주요 시기와 최근 물가 상황을 비교해 봤다. 우선 지난해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로, 2011년 이후 두 번째로 높다. 이 상승률은 과거 10년(2013~2022년) 평균인 1.6%의 2배가 넘는다. 그보다 앞서 2022년에는 5.1%라는 기록적인 물가 상승률이 1차적인 충격을 줬다. 1998년(7.5%)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보다는 낮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4.7%)보다 높은 숫자였다.
문제는 물가 상승의 폭이 과거 대비 가파르다는 점이다. 1996~1997년의 물가 상승률은 각각 4.9%, 4.5%로 ‘오르던 상황’이었다. 반면 2012~2020년까지는 0.4~2.2%선에 머무르는 저물가 국면이었다. 특히 2019년과 2020년은 0.4%, 0.5%에 달하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됐다. 정체됐던 물가가 갑작스럽게 고물가 국면으로 전환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임웅지 한국은행 물가동향팀 차장은 “기본 전제는 물가는 항상 오른다는 것”이라며 “물가 상승률만 따지면 외환위기 때보다 특별히 오른 건 아니지만, 상승률이 2010년대에 안정된 상태에 있다가 빠르게, 그리고 큰 폭으로 오르니 소비자 입장에선 현재 물가가 더 높다고 체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급여생활자 기준)는 임금과 생활물가지수 상황에 따라 물가를 체감하게 된다. 생활물가지수는 일반 소비자가 자주 구입하는 품목과 기본 생필품 141개 품목을 대상으로 작성한 지수다. ‘장바구니 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의 인상률은 소비자물가 인상률을 웃돈다. 이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에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실제 1998년(외환위기)과 2008년(글로벌 금융위기) 생활물가 상승률은 각각 11.1%, 5.3%로 물가 상승률(7.5%, 4.7%)보다 높았다. 반면 저물가 시대였던 2019~2020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생활물가 인상률이 낮았다. 피부에 와 닿는 생필품의 가격이 안정적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다 2021~2023년 다시 생활물가 인상률이 높아졌다. 소비자가 실제 물가보다 생필품 가격이 더 높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활물가는 소비자가 많이 사는 품목을 추린 수치인데 인상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다는 건 체감하는 어려움이 커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실질 임금의 감소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2월 공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살펴보면 실질 임금 상승률은 2년 연속 마이너스로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월평균 명목임금은 396만6000원으로, 전년 대비 2.5%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3.6%)보다 낮다.
물가를 반영한 지난해 실질임금의 수준은 2021년(359만9000원)보다 낮은 355만4000원이다. 2년 전보다 실질 구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석 교수는 “보통 물가 상승률에 임금 인상이 후행하는 구조인데 기업도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아 임금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실질 임금이 -1.1%로 대폭 하락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나타내는 경제고통지수(실업률+물가 상승률)까지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고통지수는 1998년(14.5), 2001년(8.1) 이후 2022년(8.0) 약 2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작년에도 6.3에 머물렀다.
경제고통지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2.2%에 머물던 2012~2020년 4.2~5.6 사이였다. 4.2였던 2019년과 비교하면 3년 만에 약 2배로 상승했다. 석 교수는 “2021년부터 6.2로 올라간 경제고통지수가 2022년 8을 찍은 이후 현재까지 획기적으로 줄지 않았다”면서 “소비자는 경제에 대한 불만이 가중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석 교수는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데 고유가 등으로 한국 물건을 살 국가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최근 엔화가 원화보다 더 약세라 미국 시장에서 일본 수출품이 가격 경쟁력을 더 갖게 됐다”며 “‘여소야대’ 형국에서 발 빠른 재정 정책이 나오기 어려워 난국을 조기에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