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슈퍼 301조’로 미국에 관세 보복…무역전쟁 재점화

수출용 BYD 전기차들이 25일 중국 장쑤성 롄윈강 콘테이너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중국이 자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긴 국가를 대상으로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는 내용의 관세법을 제정하면서 미국·유럽연합(EU) 등과의 무역전쟁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관세를 이용한 상호 보복이 이어지면 중국과 서방 경제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이 심화되고 글로벌 분업 체계의 약화로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제14기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는 지난 26일 제9차 회의에서 올해 12월 1일부터 시행되는 관세법을 가결했다. 이 법안에는 중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가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 명시됐다.

미국은 2020년 중국과 1단계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헨리 가오 싱가포르경영대 교수는 로이터에 “상대국가가 중국을 때리면 중국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핵무기’와 비슷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관세법은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가 초안을 처음 심의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허룽 사법부장은 “조약 및 협정의 최혜국 대우 조항 또는 관세 특혜 조항을 이행하지 않는 국가 및 지역에 대등원칙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법안 1조에는 초안에는 없던 “국가 주권과 이익을 수호하며 납세자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한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발전과 안보를 종합한다는 필요에서 관세 상응 조치가 추가됐다”고 평가됐다. 관세 정책 결정에 외교 안보적 이유를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서 ‘중국판 슈퍼 301조’로 불리고 있다.

베이징 내 로펌 DHH의 린치안 수석 파트너는 “이같은 보복 원칙이 법에 명시된 것은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관세법 통과는 중국과 서방 간 경제 갈등 수위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 하다.

지난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재 7.5%인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를 25%로 올리도록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권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4일부터 사흘 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왕이 외교부장을 연이어 만난 뒤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과잉 생산이 미국과 전세계 시장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의 과잉생산에 대해 “어떤 방안도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지 않았다”며 추가 관세 가능성을 언급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재임에 성공하면 모든 중국 제품에 60%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EU 역시 중국산 의료기기,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에 대해 과잉생산 여부 조사에 나섰다.

중국은 서방이 보호무역주의로 중국의 발전을 억압하고 있으며 이러한 조치가 서방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국 관영 영자 매체 차이나데일리는 “미국은 중국이 경제와 기술분야에서 자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관세, 제재, 수출 및 투자 통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대부분의 관세는 미국인이 납부했고 이는 미국 소비자, 기업의 경쟁력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 장벽이 궁극적으로 글로벌 분업 체계를 저해해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는 서방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60% 고율 관세가 현실이 될 경우 2년 만에 소비자 물가를 2.5% 높이고 국내 총생산(GDP)을 0.5% 낮출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결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정책 결정에 양 방향에서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긴축 정책의 여파가 세계 경제로 전파되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황이 심화될 수 있다.

톰 오를릭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초대형 관세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미국과 세계 경제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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